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대략 더불어민주당 의원 167명과 정의당 의원 6명이 거의 다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임명동의안 표결 직전에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들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부적격이라고 판단하면서 내세운 근거들을 보자. 부족한 공직자 윤리 의식, 시대에 뒤떨어지는 성인지감수성, 부적절한 역사 인식, 가치관의 우편향,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 등이다.
우선 윤리 의식이나 역사 인식은 그야말로 보기 나름이다. 일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윤리 의식이 경직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낙태를 허용함으로써 생명을 함부로 침탈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 존귀하다면서 태아의 생명은 그렇지 않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라는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태아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존중돼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진보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지만 결국 후보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이 후보자의 성인지감수성을 문제 삼는 근거는 성범죄 가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많이 내렸다는 것이다. 그가 담당했던 항소심 사건에서 1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한 사건은 5건에 불과한 반면 더 낮은 형량을 선고한 사건은 30건으로 무려 6배나 된다. 감형을 하게 된 대부분의 이유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했기 때문이다(28건). 이에 더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20건).
성범죄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왜 이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를 두고 성인지감수성 부족으로 매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대학생이고 초범인데 후배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고 해보자. 절대로 강제로 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게 되면 징역 4년 정도가 선고된다.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한 범행이어서 성범죄 양형 기준의 가중 구간에 속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피고인은 변호사를 구해 그의 조언에 따라 범행을 전부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합의를 구하게 된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가 제출되고 철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되면 사건은 양형 기준의 감경 구간으로 이동하게 되고 집행유예까지 가능하게 된다. 판사가 기분에 따라 형량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과거 스토킹하던 여성과 그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한 자신의 조카를 변호하면서 심신미약(충동조절장애) 감형을 주장했던 사람을 당 대표로 두고, 그에 대한 사법처리를 극렬하게 방해하고 있는 정당의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안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 들고 있지만 ‘사법부 우경화’에 대한 걱정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 정권 내내 검찰을 정치적으로 종속시키기 위해서 갖은 애를 썼다. 그러다가 이에 맞서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반면 그간에 사법부는 대법원장이 정권의 뜻대로 잘 움직여 주어 ‘좌경화’에 상당 부분 성공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지켜낸 대통령이 이제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까지 되찾고자 하니 좌파들은 겁이 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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