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조성한 정책융자금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부동산 우회 증여나 투기 등에 악용된 사례들이 적발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2일 이 같은 내용의 중소기업 정책융자금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17개 광역자치단체에 내년 5월까지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정책융자금은 지역중소기업 육성 및 혁신촉진 등에 관한 법률과 조례·지침에 따라 각 지자체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장기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금리가 낮고 대출 상환 조건이 유리해 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 직접 대출과 함께 널리 이용하는 제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부정 사용 사례가 잇달아 드러나고 불합리한 기준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이 이어지면서 권익위는 올해 2~8월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권익위는 적발한 중소기업 정책융자금 부정 사용 사례를 공개했다. A기업 대표이사는 공장·부지 매입 명목으로 융자금 10억 원을 지원받아 부친이 소유한 B기업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사실상 가족 간 우회 증여에 악용한 것이다.
융자금으로 부동산을 구입해 임대 사업에 활용한 사례도 있었다. C기업은 장애인 기업 대상 추가 금리 혜택 조건으로 29억 8000만 원을 지원받아 이 자금으로 부동산을 매입해 다른 기업과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보증금 1억 3000만 원과 월세 1300만 원을 챙겼다.
융자금으로 매입한 공장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기도 했다. 목적 외 사용에 해당된다. D기업은 공장 매입 명목으로 10억 원을 지원받아 한 산업센터 내 2개 호실을 취득한 후 이 중 1개 호실을 매도해 3억 2200만 원의 매매 차익을 얻었다.
E기업은 공장 신축 명목으로 10억 원을 지원받아 공장을 신축했다. 임차인과 20년간 매출의 20%를 월세로 지급하되 최소 월 750만 원을 보장하는 내용의 경영 위탁계약을 맺고 이 공장을 카페로 임대 운영했다.
이에 권익위는 지자체에 정기 점검 등 사후 관리를 강화하고 정책융자금을 본래의 목적이 아닌 용도로 부정 사용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정책융자금을 조기 환수하고 지원 사업 참여를 제한하도록 권고했다.
정책융자금이 특정 소수 업체에 집중되고 동일 사업에 중복 지원이 이뤄진 문제도 확인됐다. 지자체가 관리·점검을 소홀히 해 휴·폐업한 기업이 정책융자금을 대출받거나 우대금리 혜택 자격 상실 후에도 우대금리 혜택이 유지된 사례도 드러났다. 사업 내용과 무관한 소액 과태료 체납을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기업도 있었다.
이에 권익위는 사후 관리 강화와 함께 △동일 사업 중복 지원 제한 △지원 한도 설정 △세외수입 체납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납부 기회 부여 등 구체적 심사 기준을 명문화하는 제도 개선안을 지자체에 권고했다.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은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정책자금이 부정하게 누수되지 않고 투명하게 집행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불합리한 제도를 발굴해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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