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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일, 정부 재정으로 공동 벤처펀드 조성 추진

韓 중기부 日 경제산업성 올 들어 협의

정부 재정 공동 투입해 공용 펀드 조성

현실화땐 일본 진출 한국 스타트업 수혜

일본은 자국 경제 디지털화 가속화 목표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한 호텔에서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이 정부 재정을 함께 출자해 벤처·스타트업 투자 전용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한일 민간 기업이 벤처 펀드를 함께 만든 적은 있지만 양국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스타트업 공동 육성을 검토하는 것은 최초다.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이 협의 중인 이번 방안이 현실화될 시 비교적 좁은 국내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화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중기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양국 재정을 투입해 공동 벤처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을 올해 들어 협의하고 있다. 양국 부처가 산하로 두고 있는 투자 기관을 통해 재정을 풀어 펀드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좁혀지고 있다. 한국은 중기부 산하 한국벤처투자가 관리하는 '글로벌펀드’ 자금 일부를 한일 공동 펀드에 투입하는 방안을 일본 측에 제시했다. 글로벌펀드는 정부 재정을 기반으로 하는 모태펀드의 일부다. 일본 경제산업성도 정부 재원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산하 정책 금융기관을 통해 펀드에 출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한일 정부가 공동으로 재원을 출자해 펀드를 조성하면 양국에 소재를 둔 벤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이 수혜를 입게 될 전망이다. 중기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우니나라가 2013년 도입한 해외 글로벌펀드 기금 조성과 운용 방식을 따르는 방향으로 협의하고 있다. 글로벌펀드는 정부가 모태펀드를 투입해 조성한 후 민간에서 추가 출자를 받아 기금을 늘린다. 펀드를 투자받은 VC는 기금 일정 비율 이상을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의무를 진다. 한일 공동 펀드가 현실화될 시 출자를 받는 VC는 자금 일부분을 양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의무를 부여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신한금융그룹과 일본 키라보시 금융그룹 등 한일 민간 기업이 공동으로 벤처 펀드를 만든 사례는 있지만 양국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공동 벤처 펀드 조성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최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가 급격히 개선되면서 각국 재원 기반 공용 펀드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정도로 관계가 가까워진 것이다. 한·일은 지난해에도 일본 내 최대 바이오 허브인 가나가와현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 파크’에서 한국 기업들이 실증을 할 있도록 협의하는 등 협력을 확대했지만 정부 재정을 공동으로 출자하는 것은 이보다 한 수준 높은 정책 공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날 서울 서초구 한국벤처투자 본사에서 열린 ‘벤처 업계 간담회’에서 한일 공동 펀드 추진과 관련한 질문에 “관련돼 있는 경제 협력 사안들이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경제를 서로 ‘윈윈’으로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이 된다면 정부는 그런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통’ 중기장관 힘 발휘하나…세계 4위 경제대국 日 공략하면 韓 ‘3대 창업대국’ 길 열린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2일 서울 서초구 한국벤처투자 본사에서 열린 ‘벤처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 장관은 외교부 차관 출신이다. 사진 제공=중소벤처기업부


우리 정부가 일본과 협력을 대폭 확대하는 것은 그만큼 국내 스타트업·중소기업 생태계의 글로벌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국내 벤처 생태계는 태동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해외 진출·수출을 통한 글로벌화에 있어서는 역부족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기준 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이 네 번째로 큰 시장이고,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2022년 ‘스타트업 5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등 벤처 생태계를 육성하려는 의지가 크다.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SW)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스타트업이 공략하면 큰 폭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 전망이다.

중기부가 20일 발표한 ‘‘2023년 국내 벤처투자 및 펀드결성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 금액은 10조 9133억 원으로 2022년(약 12조 4706억 원) 대비 12.5%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글로벌 저금리로 유동성이 확대됐던 2021년의 15조 9371억 원과 비교해서는 더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분기별로는 1분기부터 4분기까지 꾸준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글로벌 VC의 국내 진입,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없이는 혁신 생태계 확장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 범부처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글로벌화에 초점을 맞춘 각종 과제를 제시했다.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창업 허브(가칭 ‘스페이스K)’를 조성하는 등 국내 창업 생태계를 글로벌화하는 정책이 발표됐지만 핵심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아웃바운드’ 정책이다. 정부는 약 2조 원 규모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를 조성해 해외 진출 기업을 지원하고 국내 네거티브 규제 지역 ‘글로벌혁신특구’의 해외 거점을 만들 예정이다. 이번 한일 공동 벤처 펀드 조성 추진은 이 같은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1년 10월 출범한 일본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2022년 6월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을 모토로 △인재 △과학기술 및 혁신산업 △스타트업 △녹색 전환 △디지털 전환 등 다섯 가지 중점 분야를 제시했다. 같은 해 11월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당시 8774억 엔(한화 약 7조 7621억 원)) 수준이었던 스타트업 투자 규모를 2027년까지 10조엔(약 88조 4670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장기적으로는 10만 개 스타트업, 100개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기업)을 육성할 계획을 내놓았다.

일본이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잘라파고스(영어 국가명이 ’J'로 시작하는 일본과 갈라파고스를 합친 말)'라고도 불리는 일본 경제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미쓰비시·미츠이·이토추·스미토모·마루베니 등 종합상사와 도요타·혼다·소니와 같은 대기업,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강소 제조기업을 위주로 산업이 발달해 있지만 스타트업 생태계는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다. IT와 SW 기술을 갖추고 플랫폼 운영 노하우까지 보유한 한국 스타트업이 일본에 진출하면 일종의 ‘메기 효과’를 불러오며 일본 스타트업 경쟁력 또한 올라갈 수 있다.

이런 배경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순항하고 있는 한일 관계가 더해지며 기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한국 정부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가나가와현에 조성된 일본 최대 바이오 허브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 파크에서 한국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실증을 진행할 수 있게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글로벌 10위권 제약사인 다케다제약을 보유하고 있지만 바이오 스타트업 생태계가 비교적 빈약하고, 한국에는 유수 바이오 스타트업이 있지만 신약을 본격 개발하는 다국적 제약사가 없다. 업계는 한일 바이오 협력은 양국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윈윈’의 대표 사례로 평가했다.

양국 정상은 지난해 스타트업 분야에서의 경제 협력을 시사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스탠퍼드대에서 기시다 총리와 가진 좌담회에서 “혁신에는 국경이 없고 한국은 지난 8월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을 발표했다”며 “한국과 일본, 양국 스타트업의 경쟁력이 우수한 만큼 양국의 연대와 협력이 확대되면 훌륭한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 또한 “국가 리더가 결단하고 행동하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며 "그것이 저의 신념”이라고 화답했다.

현재 양국 정부가 추진하는 공동 벤처 펀드가 현실화되면 일본에 진출하는 국내 스타트업 다수가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현재 논의되는 대로 공동 펀드가 현행 ‘글로벌번드’ 운용 방식을 따르게 되면, 펀드를 출자받는 벤처캐피털(VC)은 출자액 이상을 한국과 일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의무를 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 VC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게 되면 현지 네트워크 연결과 제도·법률 자문 등 다방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국내 스타트업은 해외 진출 때 현지 법령·제도 파악과 네트워크 형성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김영덕 은행권청년재단(디캠프) 대표는 “일본에서 사업을 하려면 신뢰할 만한 사람의 소개가 매우 중요하다”며 “아날로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 사업가들과 이미 ‘디지털 전환’을 경험한 한국 스타트업이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하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양국이 공동으로 벤처 펀드를 조성하면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현지 VC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현지화가 수월해질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스타트업 글로벌화에, 일본 정부는 자국 경제 디지털화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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