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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칼럼]4·10총선, 정치의 본령을 생각해 본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4세기에 저작한 고전 ‘정치학’을 읽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의 본령은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정치의 본질이란 결국 첫째 어떻게 권력의 소재(所在)를 결정하고, 둘째 그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다. 인간은 호모 폴리티쿠스, 즉 정치적 동물이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더라도 인간이라면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 대부분은 가족과 같은 혈연 공동체나 다른 1차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이러한 전인격적 관계로 형성된 공동체에서도 정치 행위는 이뤄지며 권력의 소재와 행사는 갈등의 요인이 되곤 한다.

국가 단위의 정치 행위는 바로 권력의 쟁취와 행사의 문제로 직결된다. 국민공동체를 근간으로 하는 국민국가가 형성된 후에도 오랜 기간 인류는 국가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총칼을 들고 서로 죽고 죽이기를 거듭했다. 민주주의가 그래도 괜찮은 제도인 것은 총칼로 결정했던 권력의 소재를 선거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칼만 들지 않았지, 정치인들은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거의 ‘모든 짓’을 다 한다. 이는 정치의 본령이자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기원전 64년 로마의 마르쿠스 키케로는 다소 이상적 성향의 정치인이었다. 그가 선거에 나섰을 때, 걱정된 키케로의 동생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짜 형에게 편지로 건네줬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조언이 담겨있었다. “실현 가능성에 개의치 말고 모든 유권자가 솔깃할 공약을 제시해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열렬 지지층 앞에서 연설을 자주 해라. 상대 후보의 섹스 스캔들을 집요히 공격해라.”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정치와 권력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도 권력의 행사에 있어서는 기원전보다 훨씬 큰 발전이 이뤄졌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이 대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국가권력을 갖고 있다는 원칙은 프랑스대혁명의 원동력이었다. 혁명 당시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는 ‘주권재왕(主權在王)’이 대세였다.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곧 국가다”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그의 후손 루이 16세는 주권재민 사상으로 무장한 대중의 혁명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는 절대왕정으로 퇴보했지만, 그 후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국가가 주권재민의 원칙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독재국가의 헌법에도 주권재민의 원칙은 등장한다.

정치인들은 본능적으로 권력을 좇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출마했다는 이들의 말은 대충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쟁취한 권력을 그 권력의 주인인 국민을 위해 사용하게 만들어 놓은 제도가 민주주의다. 쟁취한 권력은 원천적으로 일정 기간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 놨고, 이 한시적인 권력조차도 잘 사용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도 여러 군데 마련해 놓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제도가 선거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며 운영되는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은 꽤 괜찮은 민주주의 국가다. 제도가 정착됐고 나름 잘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상당 부분 결과가 아니라 절차와 제도의 영역이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언론에서는 한국 정치와 정치인 수준을 개탄스러워 하는 기사가 넘쳐흐른다. 4·10 총선이야말로 최악의 비호감 선거고 정치 혐오증이 역대급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다 맞는 주장이다. 한국 정치와 정치인, 개선되어야 할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한국 정치와 정치인에게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그런데 언제 그리 깨끗한 선거가 있었고 호감 가는 정치인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정치의 본령 중 하나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인지라 선거가 청정지역일 수 없다. 권력을 좇는 사람들이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래도 선거는 권력을 좇는 정치인들을 그 권력의 소유자인 국민이 심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제다. 많은 국민이 그 점 하나만 염두에 두고 투표장에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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