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김대일 칼럼]포퓰리즘 유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신생아 1명당 1억 원을 지급하는 부영식 출산지원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출산에 동기부여가 된다는 응답을 했다. 언론에서는 마치 저출산을 극복할 새로운 단서가 나온 것마냥 대서특필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1억 원을 싫다고 할 사람이 있을 리 없는데 아까운 예산을 들여 굳이 이런 설문조사까지 해야 했나 싶다. 이미 출산 수당은 실효성이 없다고 잘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작년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3만 명이다. 1억 원 지원금으로 출생아 수가 1만 명 증가한다면 총 지출액은 1조 원이 아니라 24조 원이 된다. 지원 없이 태어났을 23만 명에게도 모두 지급되기 때문에 그만큼 지출 대비 효과성이 낮다. 이미 매년 3조 원 이상 지출되고 있는 아동·양육·부모수당이 실효성 없는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부영은 왜 1억 원을 준다고 했을까? 사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려금은 근로자가 기업에 애착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유인이 되므로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이 늘어나고, 외부적으로는 근로자에 대한 애정과 복지가 충만한 기업으로 인식되는 이미지 개선 효과도 높다. 출산이 늘지 않아도 사기업은 이런 순효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지만, 정부의 지원금은 그런 효과가 없다.



저출산의 원인은 이미 잘 파악되어 있다. 육아도 힘들지만, 학교에 보내면 돌봄도 끊기고 사교육비도 많이 들며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은 바늘구멍이다. 일자리도 없는데 집값은 천정부지라 결혼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다. 게다가 청년층에게는 연금 고갈로 인한 세금부담 폭탄도 예상되니 출산 여력은 더 없어진다. 당연히 실효성 있는 정책이라면 어머니의 경력단절 해소, 교육개혁, 노동개혁, 연금개혁, 부동산시장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게 육아휴직을 강제한 것 이외에는 퍼주기식 아동·육아·부모 수당이 정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사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여 발상의 전환만 한다면 큰 비용 안 들이고도 효과를 실감할 정책도 많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분양순위를 올려 주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한다. 큰 비용 안 드는 발상의 전환이다. 미국의 한 소도시에서는 스쿨버스 몇 대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학생을 순차적으로 등교시키는데 초등학생을 가장 이른 7시에 등교시킨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부모가 제 시간에 출근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녹색어머니회라며 어머니들을 동원하는 우리와 잘 비교된다. 이런 진지한 고민 없이 이미 실효성이 없다고 알려진 퍼주기 정책으로 세금만 써대며 출산율 반전을 기대하는 정부는 참 염치도 없다.

총선에서 대승한 야당은 1인당 25만 원 지급을 내세워 경제성장까지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실효성 없다고 평가했듯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그러나 기본소득, 소득주도성장론, 안심소득이 그랬듯이 이런 포퓰리즘 주장은 그 진위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나온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시민대표단에게 투표시킨 것도 그렇다. 말이 시민대표단이지 연금을 받을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하여 더 내지만 똑 같이 받을지, 더 내고 더 받을지를 물었다는 자체가 합리적 정책보다는 포퓰리즘에 영합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정치인들이 눈앞의 표를 목적으로 기본소득이나 1인당 25만 원과 같은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국민연금이나 저출산과 같이 국가경제와 청년층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도 퍼주기식 포퓰리즘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인과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골치 아픈 개혁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퍼주기가 생색도 나고 가장 쉽기 때문일까? 정책 실효성을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우리 공직자들의 세상에서는 퍼주기 정책을 도입했다고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손쉽고 생색나는 퍼주기 정책으로 세금을 펑펑 쓰는 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전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로 칭송되던 대한민국의 앞길에 어느새 포퓰리즘으로 점철된 내리막길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 줄도 모른 채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국민만 불쌍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