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 전방에 적 항공기 출현, 비상! 긴급잠항!”. 해군의 3000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에서 갑자기 비상경보가 발령됐다. 잠수함 함교에 설치된 둥근 막대 모양의 잠망경만 물 밖으로 내밀며 조용히 움직이던 중 긴급한 무전이 오갔다. 부산 해군기지에서 10㎞ 가량 수중으로 이동하던 중에 잠망경에 가상의 적 항공기가 포착된 것이다.
붉은 빛이 감도는 내부에는 긴박감이 흐르면서 순간 승조원들은 전광석화와 같이 정해진 자신의 위치로 움직이고 긴급한 외침이 가득했다. 지휘관의 명령과 함께 길이 83m의 기다란 잠수함의 기다란 선체가 육중한 소리를 내더니 앞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보통 잠항을 할 때 22도 정도로 들어가지만 긴급 상황이라 25도로 세팅됐다. 안전바를 잡지 않으면 앞구르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기울자 공포가 급습했다.
조타기로 잠수함을 운전하는 조타 부사관이 깊은 바다로 잠수함을 몰며 “100m, 120m, 150m, 180m, 200m 목표심도 잡기 끝”이라고 외쳤다. 3분도 안돼 잠수함은 해저 100m에서 200m 밑으로 내려가는 기민함을 보였다. 그 순간 또 한차례 긴급한 보고가 무전기를 타고 흘렀다. “적 함정 출현! 어뢰 발사 준비!” 수중의 도산안창호함의 수중음파탐지체계인 ‘소나’를 운영하는 음탐 부사관들이 음향센서를 이용해 15㎞ 전방의 적 수상함의 위치를 식별하면 11㎞ 앞까지 은밀하게 다가가 어뢰를 발사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다.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장관이 범상어 중어뢰 발사 버튼을 눌렀다. 잠수함 음향센서에 의해 적 수상함을 명중시킨 어뢰 폭음이 감지되자 잠망경을 올려 적 수상함이 격침된 것을 최종 확인하고 임무를 완수한다. 긴급 잠항부터 무장 버튼 발사까지 긴박감 넘치는 모든 장면에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든 장면은 실전이 아닌 가상훈련이었다.
보이지 않는 은밀성과 기민함으로 그 존재 자체가 엄청난 위협이기에 잠수함은 비대칭 전략 무기 체계다. 특히 잠수함을 자체 설계 건조해서 운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현재 3000t급 이상의 잠수함을 운용 중인 국가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 호주, 인도 등 8개국 정도다. 더 중요한 대목은 이러한 잠수함 승조원을 선발하고 교육하는 양성은 최신예 잠수함 전력을 증강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승조원의 능력에 따라 수중 전투의 승패 뿐만 아니라 잠수함 승조원 전체의 생사가 결정될 수 있기에 그렇다. 잠수함이라는 특수한 환경과 높은 업무 난도 탓에 승조원 한 명을 양성하는 데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잠수함에 타기 위한 예비 관문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잠수함 승조원 교육훈련’을 담당하는 부대는 해군 잠수함사령부 제909교육훈련전대다. 이곳은 잠수한 승조원들의 ‘고향’이다.
지난 8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 잠수함사령부 내에 있는 제909교육훈련전대 ‘도산안창호급 종합훈련장’을 찾았다. 베테랑 잠수함 승조원들도 작전을 나가지 않으면 무조건 이곳을 찾아 잠수함 작전 및 교전 절차, 수상항해, 수중항해 숙달을 위한 훈련을 수시로 받는다. 잠수함 승조원의 자격 요건부터 돌고래 휘장을 가슴에 달고 정식 잠수함 승조원으로 근무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될까.
잠수함사령부 제909교육훈련전대 추후식(중령) 제2훈련대대장은 잠수함 종합훈련장에 대해 “잠수함 승조원에게는 ‘100번 잠항하면 100번 부상한다’로 대표되는 임무수행환경의 특성상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최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며 “잠수함사령부는 최초 선발부터 교육 및 훈련과정에서 실제 잠수함과 유사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장비와 체계운용 절차를 숙달할 수 있게 잠수함 함형(장보고급, 손원일급, 도산안창호급)에 맞는 ‘시뮬레이터’ 훈련장을 조성·운용하고 있다”고 했다.
잠수함 종합훈련장 소개와 함께 잠수함 운용 개념, 장비 운용 훈련 등에 대한 이론 교육을 받은 후 곧바로 잠수함 승조원의 실전 훈련 체험에 들어갔다. 이날 체험은 도산안창호급 종합훈련장에서 진행했다. 실제 잠수함과 동일하게 구성된 전투정보실과 훈련 모사를 위한 장비실, 훈련 후 사후 강평을 위한 통제·강평실, 영상장비실로 구성됐다. 먼저 대형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전술훈련장부터 입장했다. 앞서 기자는 곧 실전배치될 도산안창호급 신채호함을 탐방한 경험이 있어 눈 앞에 들어온 여러 대의 콘솔 앞에 앉아 헤드폰을 쓴 채 훈련관들의 모습과 반대편으로는 보이는 잠망경과 테이블 형태의 항해지휘 콘솔은 마치 신채호함 전투지휘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너무 똑같았다.
음탐사는 소리만으로 추진기 특성을 파악해 표적을 분석했고, 무장관은 각종 센서의 흐름을 파악하며 관심 표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후 무장관은 표적의 속도와 침로를 산출해 표적이 언제 아군에 도달하는지를 파악하는 집중했다. 이런 가운데 함장은 부장·작전관 등과 함께 항해지휘 콘솔을 통해 전체 상황을 모니터하며 작전을 구상했다.
표적 문제가 해결되자 함장은 마지막으로 잠망경을 통해 표적의 실체와 실제 거리를 확인했다. 잠망경 손잡이를 잡고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하며 올렸던 손잡이를 재빨리 내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은밀함이 잠수함의 생명인 만큼 6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바다 위 전방위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함장의 어뢰발사 명령과 무장관의 복창이 이어졌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 4, 3, 2, 1, 발사!” 무장관과 음탐관은 각각 어뢰 발사 허가 버튼과 발사키를 동시에 눌러 어뢰를 발사했다. 이어 어뢰가 적 군함을 명중시킨 폭음이 들렸고, 함장이 잠망경으로 최종 확인하는 것으로 가상 훈련은 마무리됐다.
또 다른 컨테이너인 조종훈련장에 들어설 때는 조종석과 통신시설, 엔진 등 각종 잠수항 장비가 한눈에 들어왔다. 문이 닫히고 훈련관이 조종석에 앉자 “함수 전방 적함 발견”이라는 외침과 함께 본격적인 잠항 훈련이 시작됐다. 훈련장에 날카로운 경고음 소리가 울리더니 승조원 전원은 “비상! 비상!”을 외쳤다.
이들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전투지휘실 잠항 준비 끝”, “함내 잠항 준비 끝”을 복명복창했다. 훈련은 적 함정이 발견된 상황을 가정해 잠수함이 수심 100m까지 긴급 잠항을 시작했다. 지휘관의 명령과 함께 시뮬레이터가 육중한 소리를 내더니 앞으로 빠르게 기울기 시작했다. 훈련이었지만 안전바를 잡지 않으면 앞으로 구를 정도로 몸이 기울어졌다. 실전과 똑같이 시뮬레이터가 25도 기울기로 잠항하는 것을 재연했기 때문이다.
훈련장은 종경사 45도, 횡경사 30도까지 구현 가능하다. 파고는 수십m로 가정할 수 있다. 디젤엔진·해수펌프·공기압축기 등에서 나오는 내부 소음도 실제와 동일하다. 도산안창호급 잠수함을 본따 만든 이곳 조종훈련장에선 긴급 잠항부터 조종 숙달, 어뢰 회피, 긴급상황 대처 등 대부분의 잠수함 훈련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잠수함은 잠항할 때 높은 수압을 받기 때문에 창문을 설치하지 않는다. 훈련장 역시 잠수함과 같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창문을 만들지 않고, 온도와 습도 등 답답한 분위기도 그대로 재연했다. 추진계통 고장, 선체 침수, 적 어뢰 탐지 등 위험한 상황을 대비한 훈련도 가능하다. 해군은 총 3 대의 이 같은 훈련 시설을 보유 중이다.
해군 관계자는 “조종훈련실에서는 함 조종술 숙달훈련, 잠항 및 심도유지 훈련, 비상사고 처치훈련을 통해 도산안창호급 잠수함 승조원들이 장비고장 및 긴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숙달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조함훈련장을 찾았다. 잠수함 승조원의 수상 항해능력 배양을 위해 2020년에 체계개발해 설치 및 운용시험평가를 거쳐 2021년 초 전력화됐다. 조함훈련장은 함교훈련실과 함내훈련실로 구성돼 있다. 함교훈련실은 ‘세일’(Sail)이라고 통칭되는 함교탑을 중심으로 원형의 스크린을 통해 주요 항구와 협수로가 정교한 그래픽으로 묘사돼 실전 처럼 훈련을 진행한다.
함교에 오르면 훈련관의 지시에 따라 주간·야간·일출·일몰과 같은 시간대 설정부터 안개나 눈 등의 기상상황, 파고, 저시정 등 실제로 수상항해 시에 접하게 되는 상황들을 디테일하게 묘사돼 출·입항 상황, 연안항해, 야간항해, 저시정항해 등의 조함훈련을 체험할 수 있었다. 파고가 10m 넘는 상황으로 세팅된 체험 과정에서는 몸을 가늘기 힘들만큼 좌우로 흔들고, 시정거리 500m가 안되는 짚은 안개가 바다를 뒤덮은 상황은 해군기지 입항 과정에 정말 충돌을 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이어진 함내훈련실에서는 항해 장비들이 설치돼 함교탑의 조함 지시에 따라 조함 운용 능력을 키우기 위해 실제 어떻게 훈련하는지 체험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잠수함사령부 내 제 909교육훈련전대는 ‘100번 잠항하면 100번 부상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잠수함 항해안전 및 생존훈련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전투임무 수행 중 발생 가능한 비상상황이나 장비·계통의 고장 상황 시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 능력을 향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시행되는 ‘전투잠항훈련’이 대표적이다. 전투잠항훈련은 정박-해상 훈련을 연계해 진행한다.
이러한 교육훈련 결과는 외국군이 우리나라 해군에서 잠수함 관련 교육을 받는 ‘국제잠수함과정’ 개설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2013년 처음 개설된 이래 2023년까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10개국 93명의 외국군이 교육을 수료했다. 10회째를 맞이하는 올해는 5월 20일부터 7월 12일까지 약 8주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태국 등 7개국 16명의 외국군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도산안창호급 잠수함(KSS-III Batch-I)의 모의훈련을 위한 전술훈련장은 한화그룹의 방산계열사 한화시스템이 구축해 해군이 지난 3월말부터 본격적인 운용을 시작했다. 전술훈련장은 해군 잠수함 승조원들이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항해 및 무장 운용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으로, 국산 시뮬레이터 설비 등 잠수함 전술훈련장이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술훈련장은 잠수함 항해·전술 훈련이 지상에서도 가능하도록 구현했다. 훈련장은 잠수함 내부와 한반도 주변 해양·수중·음파 환경을 재현해 승조원이 해상에 나가지 않고도 수중 항해와 무장 운용 등 임무 수행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했다. 훈련실에는 함정 전투체계를 운용하는 다기능 콘솔, 항해 콘솔 등이 실제 도산안창호함의 전투지휘실과 똑같이 만들어져 승조원들의 항해·전술 훈련 몰입도를 높였다. 소나(음파 탐지기) 신호를 포함해 함정에 탑재된 센서, 무장 등의 시뮬레이터도 전장 상황을 100% 구현한다.
한화시스템은 이번에 구축된 전술훈련장에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적용돼 보다 입체적 훈련 환경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정해진 시나리오대로만 표적이 움직이던 기존 훈련장과 달리 AI 알고리즘이 자함의 추적·회피를 판단한 후 예측 불가능하고 다면적인 기동·교전 상황을 제공해 우리 해군이 다양한 상황에서 전투지휘 및 전술운용 능력을 키울 수 있게 개발됐다.
박도현 한화시스템 지휘통제사업부문 사업대표는 “국내 최초로 장보고-Ⅲ 사업 잠수함의 전술훈련장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낸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진행될 후속 잠수함의 전술훈련장 구축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며 “유럽·동남아 등 다양한 국가로의 잠수함 전투체계와 전술훈련장을 함께 공급하는 패키지 수출 활로 또한 모색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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