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났다. 조 장관은 라브로프 장관에게 북·러 군사협력 강화 등에 대한 엄중한 입장을 전달했다. 라브로프 장관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라브로프 장관은 조 장관과 만나기 직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 대한 평가를 솔직하게 말하겠다”며 “북한 고립과 응징을 위한 미국의 한반도 주변 작전은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27일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조 장관과 라브로프 장관이 약식 회동을 했다고 밝혔다. 두 장관의 회동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직후 이뤄졌다. 조 장관이 라브로프 장관과 별도로 만난 건 지난 1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두 장관은 이날 주요 현안 및 한반도 상황에 대해 논의하며 한러 양측이 앞으로 대화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조 장관은 라브로프 장관에게 최근 북·러 군사협력 강화 등에 대한 엄중한 입장을 전달했다.
라브로프 장관이 어떤 언급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우려되는 점은 최근 미국이 한국과 공동 핵 계획에 합의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우리는 이 합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조차 듣지 못했지만, 추가적인 불안을 야기할 거란 점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일본, 한국은 한반도 정세를 고조시키고 자신들의 존재를 군사화하는 한편 무력 행동 준비를 목표로 하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조 장관 측이 먼저 회담을 요청했다며 “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으니 그의 말을 잘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 대한 평가를 솔직하게 말하겠다”며 “북한 고립과 응징을 위한 미국의 한반도 주변 작전은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한국과 러시아는 연일 충돌하는 모양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전날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참석 계기에 10개국과 양자 회담을 갖고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 밀착 속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 필요성을 피력했다. 조 장관은 양자 회담에서 공통적으로 북한의 복합 도발 및 러시아와의 불법 밀착을 규탄하고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지지를 당부했는데 이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안보 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 북러 밀착을 비판하는 내용이 반영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다. 특히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약 40분간 진행된 회담에서도 북러 밀착 의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위해 양국 간 긴밀한 전략적 소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반면 러시아는 전통적인 우방국인 중국과 라오스 등과의 협력하는 모양새다. 중국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날 러시아, 라오스와의 3국 회의에서 “세기적 변화의 국면이 계속되고 있고, 세계가 새롭게 요동치는 변혁기에 접어들었다. 국제 체제는 심각한 조정을 겪고 있으며, 세계적 경제 회복 속도는 느리다”고 말했다. 또 “패권주의, 일방주의, 보호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마당은 작게, 담은 높게‘와 ‘디커플링과 연계 차단’이란 암류가 치솟고 있다”며 “그러나 동시에 평화, 발전, 협력, 공영의 시대적 주제는 여전히 국제사회 민심이 향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전날에도 양자 회담을 가졌다. 러시아 외무부는 라브로프 장관과 왕 부장이 “유라시아의 새로운 안보 구조를 창설하자며 러시아 측이 제안한 개념의 이행 전망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또 “중러는 진정한 다자주의 원칙에 따라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정의를 갖춘 다극주의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협력해 왔다”고 주장했다.
한편 EAS 외교장관회의 이후 개최된 ARF 외교장관회의에는 리영철 북한 주라오스대사가 참석했다.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 협의체다. 리 대사는 회의장 입장 전 북러 협력, 최선희 외무상 불참, 오물풍선 살포 등에 대한 한국 취재진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행사장 경호원이 취재진을 몸으로 밀어내는 등 다른 인사와 달리 강하게 저지하기도 했다. 리 대사는 전날 의장국 주최 갈라만찬 때 조 장관의 인사를 거부한 이유를 묻는 말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