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5월의 어느 날. 서울의 한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김이노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섰다. ‘이노’라는 이름은 세상을 새롭게 만들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이노베이션(innovation)에서 앞 글자를 따 지어준 이름이다. 이노는 서울 망원동에 살고 있지만 강남에 있는 회사까지는 불과 15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부가 구축한 슈퍼컴퓨팅 시스템을 기반으로 서울 곳곳에 자율주행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이제는 출근길 지옥철이라는 개념이 사라졌고 서울 집값도 지역별 편차 없이 대체로 비슷해졌다.
◇디지털 트윈 통한 '새로운 민주주의'
건물에 들어선 이노는 디지털 트윈 플랫폼에 접속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국민 입법 네트워크에서 실시간 법안 투표가 진행 중입니다. ‘개인 교통수단 규제 완화’에 대한 입장을 선택해주세요.”
이노는 화면을 훑었다. 다른 시민들의 의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데이터, 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이 한 화면에 정리돼 있다. 찬성을 클릭하고 의견을 입력하자 정부 인공지능(AI)이 이노의 의견을 즉시 반영했다.
“당신의 의견이 정책 설계 시뮬레이션에 반영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찬성률은 68.4%입니다.”
디지털 창 아래 실시간 참여 현황 그래프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이것은 단순한 클릭이 아니었다. 바로 새로운 민주주의였다. 이노는 화면을 닫기 전 한 가지를 더 확인했다.
“정부에 제출한 기술 역량 강화 사업 결과는 어떻게 됐어?”
“네, AI 기반 기업 역량 분석 결과 귀사는 제품 추천 알고리즘과 고객 행동 예측 모델 분야에서 맞춤형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신청한 정부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의 결과였다. 공공 데이터를 개방해주고 박사급 전문가 협업까지 가능하다는 정부 AI 에이전트의 안내에 이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화면 오른쪽이 깜빡이더니 알림 하나가 떴다.
“이노 님, 어머니의 치매 돌봄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지 기능 강화 프로그램과 맞춤형 케어 3단계를 오후 4시부터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노는 미소 지었다.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되지 않는 세상. 데이터 기반 복지와 연동된 돌봄의 확대. 이노의 하루하루가 ‘안심’으로 채워진다.
AI 에이전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오늘 시민 행복 지수는 97.3%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오전 근무를 마친 이노는 동료들과 식당으로 향했다. 부르지 않았는데도 자율주행 셔틀이 알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타자마자 이노의 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노 씨, 우리 진짜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거 같지 않아요? 이렇게 평온하고 안전한 세상이 과거에도 있었을까요?”
◇성장률·개인행복까지 구석구석 관리
이노와 동료 직원들은 테헤란로의 한 한식당에 도착했다. AI 예약 시스템이 이미 자리를 맡아뒀다. 식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벽면 투명 스크린에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발표된 2050년 1분기 세계 경제 동향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AI 기반 경제 운영 시스템을 통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4.2%를 기록하며 주요 20개국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AI 재정 조정 메커니즘과 실시간 공급망 대응 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하며 유럽 주요국, 북미, 일본 등 비AI 정부 국가들의 -0.5~1.0% 성장 대비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습니다.”
“보셨어요?” 한 직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경제정책 방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네요. 이것도 AI의 분석을 거친 걸까요?”
이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예전에는 이런 성과가 정부 발표 자료에만 있었는데…지금은 체감이 되잖아요. 우리 엄마 병원 예약도, 회사에 대한 정부 지원도. 모든 게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어요.”
“맞아요.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은 아직도 부처 간 협의에 몇 달 걸린대요. 민원 처리도 줄 서서 하고. 종이 서류에 도장도 찍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진짜요? 그건 2020년대 얘기인 줄 알았는데….”
한 직원이 조용히 덧붙였다.
“그쪽 출신 개발자를 한 명 데려왔는데요. 저희가 AI 정부랑 일한다고 했더니 그 친구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요. 그 나라에선 행정 AI 시스템이 아직 실험 단계래요.”
이노는 생각에 잠겼다. 눈앞에 놓인 된장찌개보다도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가 더 뜨겁게 느껴졌다.
오후 회의는 짧고 정확하게 끝났다. 정부에서 중소기업을 위해 개발한 AI 에이전트 모델이 사전에 회의 의제를 조율하고 실시간으로 토론 흐름도 요약해줬기 때문이다. 행정은 더 이상 ‘권위’가 아니었다. AI는 치밀하고 정직했다.
“AI 정부는 판단하고 설계하고 실행합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언제나 사람의 질문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벽면에서 AI 뉴스 앵커의 말이 흘러나왔다.
“사람을 위한 기술, 공공성을 위한 플랫폼. 이것이 2050년, 우리가 선택한 미래입니다.”
이노는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것이 AI 정부가 만든 ‘평온의 기적’이었다.
근무를 마친 이노는 퇴근 셔틀에 몸을 실었다. 도심을 벗어나며 창밖의 풍경이 느긋하게 흐른다. 도시의 모든 전광판에는 뉴스 대신 ‘시민 공감 콘텐츠’가 돌아간다. AI가 시민 감성 패턴을 분석해 퇴근 시간에는 자연 풍경 영상이나 따뜻한 이야기 위주로 자동 편성한다.
차량 내부에는 조용한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다. AI 운행 관리 시스템이 이노의 생체 리듬과 기분을 분석해 가장 안정적인 주파수와 음악을 선곡한 것이다.
◇복지 사각지대 찾아 '안심' 사회로
이노는 자연스럽게 스마트워치를 탭했다.
“엄마 상태는 어때?”
“현재 심박수 안정적, 인지 자극 반응 양호. 오늘 돌봄 프로그램 3단계 중 2단계까지 완료. 남은 과정은 귀가 시점에 맞춰 진행 예정입니다.”
“식사는요?”
“AI 영양 시스템에서 ‘저염 고단백 한식형 식단’을 자동 주문 및 제공했습니다.”
이노는 문득 AI가 사람보다 더 사람을 잘 돌보는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거실에 가상현실(VR) 안경을 착용한 채 앉아 있었다.
“엄마, 오늘은 어디 다녀오셨어요?”
“음, 오늘은 백두대간 숲길을 다녀왔지. 향까지 나더라. 아주 진했어.”
AI 복지 시스템은 홀로 지내는 고령자에게 일일 ‘감각 자극 콘텐츠’를 제공한다. 시각·청각·촉각 심지어 냄새까지 재현되는 몰입형 여행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치매 예방을 위한 실질적 치료 방식으로 설계돼 있었다.
이노는 식탁에 앉아 식사 준비를 확인했다. 이미 모든 게 준비돼 있었다. AI 플랫폼이 그의 취향과 영양소 요구량, 심리 상태까지 반영해 조절한 메뉴였다.
“이노야, 너 그 정부 프로젝트 붙었다며? 뉴스에서 들었다.”
“응. 그 얘기 벌써 봤어?”
“오늘 뉴스에 나오더라. 그거 보면서 참, 요즘 애들 좋겠다 싶었지.”
TV에서는 ‘2050년 AI 정부의 산업 혁신 프로젝트 선정 기업 발표’ 뉴스가 막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막이 지나갔다.
“이번 AI 산업 전략 3.0 과제 선정으로 스타트업 1200여 곳이 맞춤형 기술 자금 지원과 글로벌 연계 기회를 확보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비AI 정부 국가 대비 연구개발(R&D) 민간 투자 유치율 3배, 기술 상용화 속도 5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말했다.
“예전에는 이런 것을 하려면 줄 섰다, 기다렸다, 사람 만나고 힘들었어. 그땐 왜 그리 뭘 해도 시간이 걸렸는지 몰라. 이젠 그냥… 어쩜 이리 착착 되니?”
밤이 깊었다. 이노는 작은 발코니에 나와 별을 바라보았다. AI가 추천한 오늘의 명언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기술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일 뿐, 그 삶의 주인은 결국 인간이다. AI 윤리 알고리즘 제44차 시민헌장.”
이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AI는 판단하고, 설계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여전히 무엇을 꿈꿀지는 인간의 몫이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원장이 내다본 2050년 미래에 대한 기고를 챗GPT를 통해 공상과학소설(SF) 형태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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