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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IT건물에 사원증까지…스타트업 다니는 느낌이었다"[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1> 우리는 AI 첨단기업 - 사기 조직원 3인 인터뷰

팀 세분화 100% 성과제 방식 운영

활동 당시에는 죄책감조차 못느껴

복장규정·지각 벌금 등 내규 철저

수익금 절반은 韓조직서 자금세탁

피해자 설득·협박 전문조직도 운영

태국 방콕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투자 리딩방을 빙자한 사기 범행 도중 태국 경찰청 이민국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된 한국인 조직원 8명이 지난해 8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강제송환되고 있다. 사진 제공=경찰청




“자동차 회사가 주력 모델에 마케팅을 집중하는 것처럼 사기 조직도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보이스피싱·로맨스스캠·리딩방 중 성공률이 높은 팀에 유동적으로 인원을 배치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셈입니다.”

중국 랴오닝성의 한 도시에 거점을 두고 있는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피해자 모집책으로 활동했던 30대 김승주(가명) 씨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범행에 가담했을 당시 자신이 일반적인 회사원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조직이 내·외형적으로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고 밝혔다. 흰색 형광등 아래 깔끔하게 정리된 김 씨의 책상 위에는 고성능 컴퓨터가, 그 옆에는 가족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와 각종 기념일이 표시된 달력까지 놓여 있었다. 김 씨는 성공한 스타트업에 다닌다는 생각이 들어 활동 당시에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김 씨는 “조직 사무실은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밀집된 지역에 있는 큰 건물에 있었고 출입을 위한 사원증 등 일반적인 회사에서 볼 수 있는 외형적인 체계는 다 갖추고 있었다”며 “같은 건물에 있는 실제 IT 업체 사원과 대화를 하던 중 ‘같은 업종 종사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질문을 들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융화돼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의 조직은 보이스피싱·리딩방·로맨스스캠 분야에서 각 2개 팀씩 총 6개의 팀으로 나뉘어 운영됐다. 각 팀은 팀장 1명에 피해자들을 끌어들이는 1차 직원 4~5명과 확보된 피해자들을 상대로 위해 또는 협박을 통해 금원을 편취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2차 직원 2~3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임금체계는 100% 성과제로 운영됐으며 편취 금액이 높을수록 조직원이 가져가는 몫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일정 금액이 넘어가면 인센티브도 부여된다.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30일 이상 근무할 시 만근수당까지 지급된다.



수익금이 발생하면 절반은 한국에 있는 자금세탁 조직의 몫이 된다. 나머지 절반은 조직원의 성과도에 따라 분배된다. 3분의 1은 금원 편취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조직원들이, 3분의 1은 조직원이 소속된 팀이, 나머지 3분의 1은 총책이 가져간다. 그렇기 때문에 총책은 금원 편취액이 낮은 팀장에게 실적 압박을 가하고 팀장은 팀원들을 닦달하는 상황도 연출된다.

보이스피싱을 주력으로 하다 실적 부진에 최근 신사업 개념으로 로맨스스캠 팀을 신설한 캄보디아의 한 조직에서 제안을 받고 근무한 이영혁(가명) 씨에게서도 조직의 체계성에 관한 증언이 나왔다. 그는 “연봉제를 적용하는 조직이라 성과를 바탕으로 연봉 테이블을 마련해 협상을 하기도 했다”며 “정장 혹은 깔끔한 캐주얼 정장 차림을 해야 한다는 복장 규정은 물론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나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었고 업무 중에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지각을 하면 일정 금액의 벌금을 내야 하는 규칙이 있을 정도로 회사 내규가 철저했다”고 밝혔다.

조직의 총책은 직원 복지 개념으로 숙식을 제공했다. 특히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한식을 배달시켜 주기도 했으며 여성 직원 숙소에는 퀸사이즈 침대까지 설치했다. 사무실 청소를 담당하는 인원도 고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사기 조직도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20대 박민지(가명) 씨가 근무하던 인천 구월동의 한 로또 당첨 번호 제공 사기 업체는 한술 더 떠 정보통신업 정식 업체로 등록하고 직원들을 상대로 4대 보험 가입까지 진행했다. 해당 업체는 본사 1개에 산하 지사 10여 개로 구성돼 있었으며 직원은 지사를 포함하면 100여 명에 달했다. 본사는 소형 빌라 3~7층을 임대해 대표실, 식당, 업무 공간 등으로 분리돼 운영됐다. 본사 영업팀은 5개였으며 행정 업무를 하는 사무팀과 환불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설득하거나 협박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고객 대응팀도 있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조직 검거 이력이 있는 안정엽 충남경찰청 형사기동대 팀장은 “정산을 확실히 하기 위해 주급 명세서를 발행하고 직원과 조직이 모두 급여 계산을 크로스체크하는 등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들의 운영 방식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세련돼졌다”며 “내부 체계뿐 아니라 인력 충원을 위해 팀을 따로 두고 중국으로 수급된 인원을 초대해 각종 유흥과 관광을 제공하며 자연스럽게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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