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감축설을 부인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2기 정권의 국방 구상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또는 역할 조정이 추진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정부가 기본적으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초점을 맞춰 국방 전략을 수정하고 있어서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위협을 키우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안보 불안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22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주한미군 4500명 이전 검토’ 보도와 관련해 국내 전문가들은 미 국방부가 올 8월 말까지 수립할 ‘2025 국방 전략(NDS)’에 맞춰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NDS에는 중국의 위협을 염두에 두고 업그레이드한 미국의 국방 전략이 담기게 된다. 특히 NDS 수립을 총괄하는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방 참모로 꼽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으로, 그는 트럼프 2기 정부에 합류하기 이전부터 해외 미군의 배치 및 역할 재조정을 주장해왔다. 해외 미군을 중국 대응이라는 최우선 과제에 맞춰 재배치하고 동맹국들도 비용 부담 또는 역할을 늘려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또 한국·일본·독일 등 미군 주둔국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증액을 요구해왔다.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이 담긴 새로운 NDS가 수립된 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동맹국들과 협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WSJ가 보도한 주한미군 감축은 NDS 수립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 검토되는 내용으로 보인다”며 “중국 위협 방어를 최우선으로 둔 NDS를 8월 말 완성한 후에는 전 세계의 미군 재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글로벌 전략을 재조정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단순히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문제를 떠나 한반도 안보 지형의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미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요구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포석 마련 차원을 떠나, 더 전략적 차원에서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다뤄지고 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에도 주한미군 감축을 시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부 고위직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운 2기에서는 보다 강력하게 의지를 관철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 WSJ 보도에 4500명이라는 숫자가 담긴 점에 더욱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이는 전체 주한미군(2만 8500명)의 16%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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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장 미국 국방부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션 파넬 국방부 수석 대변인 겸 선임 보좌관은 WSJ의 보도에 23일 “사실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한국에 대한 방어 공약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고, 양국의 철통같은 동맹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새 정부 당국자들과 협력할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도 입장문을 통해 “새 정부와 우리의 철통 같은 동맹을 유지·강화하는 방안을 협의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앞서 새뮤얼 퍼파로 인도태평양사령관도 지난달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침공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한 바 있다.
주한미군 감축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우리 군 당국자는 “주한미군 병력 변화는 한미 간 동맹의 정신, 상호 존중에 기반해 양국 간 협의가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며 “한미안보협의회(SCM), 한미군사위원회의(MCM) 등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들려온 주한미군 감축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러시아와의 군사적 밀착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의 대가로 군사·기술적 지원을 얻어내 무기를 현대화하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외교안보통으로 꼽히는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주최한 ‘신정부 외교정책 대토론회’에 참석해 “우리의 대북 억제력이 약화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며 이러한 원칙하에 (미국과) 모든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도 주한미군 덕분에 얻는 이익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고 우리가 극단적인 상황을 예단해서 앞서나간다면 협상 패를 버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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