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상호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면서 국내 기업들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국 중심으로 생산지를 재편하던 와중에 관세정책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대응 전략을 신속하게 준비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대신 품목별 관세를 확대하는 압박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정책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를 수립해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등은 미 법원이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를 무효화시킨 데 대해 백악관과 행정부의 대응 등 향후 사태 전개 방향에 대한 시나리오와 생산지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고 스마트폰·가전 사업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은 스마트폰과 정보기술(IT) 기기에 최소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대응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LG전자는 스윙 생산 관점에서 테네시주 공장에서 생산하는 세탁기와 건조기 물량 확대 계획을 세웠다.
전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항소와 함께 집행정지도 신청한 상황이라 기존 관세정책에는 변동이 없다”면서 “현재로서는 국가별 통상 협상 상황뿐 아니라 트럼프 정부와 연방법원 간 소송 진행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타이어 업체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현대차(005380)는 미국 이외 시장에서 생산해온 완성차 물량을 미국 공장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되는 미국 판매용 투싼은 미국 앨라배마공장(HMMA)으로 돌리고 HMMA에서 생산하던 캐나다 판매 물량을 멕시코로 넘기는 방안도 시행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테네시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을 500만 개에서 1200만 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조지아주에 연 330만 개 생산 공장을 갖고 있는 금호타이어는 수출 비중이 높은 제품은 최대한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물량 조절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품목 관세는 유지되는 탓에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관세 적용 전에 미국에 쌓아둔 재고 물량도 소진되면서 하반기부터 관세 폭탄의 영향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완성차와 철강 업체들은 지난달부터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에 25% 품목 관세를 적용받고 있고 이달부터는 자동차 부품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오린태 부산자동차부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날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자동차 부품에 25% 관세가 부과되면서 대미 수출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다”며 “미국의 관세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기업 존립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트럼프 정부가 무역적자 해소라는 명분 아래 상호관세 대신 품목별 관세를 확대하거나 다른 수단을 활용해 무역 상대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장 상호관세 부과를 전제로 7월 8일로 제시됐던 한미 관세 협의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성대 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트럼프 행정부 측이 원하는 수준의 관세 조치가 실행되지 않을 경우 품목 관세 확대 등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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