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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송현] 도심 속 비둘기와의 공존

이수연 서울시 정원도시국장  

이수연 서울시 정원도시국장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곁으로 비둘기 몇 마리가 날아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보도와 차도를 오가던 비둘기에게는 빠르게 지나는 자동차들조차 익숙한 모습이었다. 근처에 있던 아이가 들고 있던 빵을 흘리자 금방 여러 마리의 비둘기가 아이에게 몰려들었다. 이렇게 도심에서 흔히 마주치는 비둘기는 본래 인간의 돌봄 없이도 자연 생태계에서 스스로 살아야 하는 야생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영리하고 길들이기 쉬운 비둘기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송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평화의 상징’으로 부각시켜 대량으로 하늘로 날려 보내기도 했다. 비둘기는 인간과 함께 살기에 최적인 새로 사랑받으며 반야생화해 도시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던 비둘기는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요즘은 도시의 골칫덩이로 여겨지기도 한다. 도시에서 인간 활동의 부산물로 나온 먹이를 쉽게 구하며 비정상적인 개체 수 증가로 이어졌다. 그 결과 비둘기의 강한 산성을 띤 배설물은 건물과 문화재·교량 등을 부식시키고 다중 이용 공간에서 질병 전파 우려를 낳았다. 비둘기 피해 민원은 서울에서만 2018년 430건에서 지난해 1480건으로 급증했다.



그간 각 자치구에서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현수막 등을 설치하고 계도 활동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둘기의 개체 수와 민원이 외려 증가하는 바람에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이 특정 장소와 시기를 정해 유해야생동물에 대한 먹이 주기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일부에서는 ‘‘불임 먹이’ 등을 주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하지만 이는 다른 야생동물이 먹을 수도 있고 생태계 교란 가능성도 있어 환경부에서도 권장하지 않는 방법이다.

서울시가 이번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먼저 38곳의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구역을 지정한 것은 비둘기 피해 민원이 가장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구역은 공원·광장 등 시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장소로 한정했다. 서울시의 먹이주기 금지구역은 조례에 따라 3년마다 지정 변경 검토가 가능하다. 오는 7월부터는 먹이주기 금지구역에서 규정을 위반할 경우 야생생물법 시행령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독일·싱가포르·홍콩·태국 등에서는 이미 유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누군가는 ‘왜 비둘기에게 먹이 주는 것이 단속 대상이 되느냐’고 반감을 가질 수 있지만 이 정책은 비둘기를 혐오하거나 퇴치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 개체 수를 생태적으로 조절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화해 사람과의 공존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비둘기가 자연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도록 긍정적 거리 두기를 하는 것, 이것이 비둘기가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올바른 공존의 시작이다. 이제는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을 위해 인식의 전환을 꾀할 필요가 있다. 평화의 상징도, 골칫거리로의 인식도 어느 것 하나 비둘기가 원한 것은 없다. 그저 비둘기는 비둘기답게 자연의 일원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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