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은 ‘내란 종식’ 프레임이 끝까지 견고했던 선거였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 채 특별한 미래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를 낳았던 세대포위론(보수 성향의 60대·70대에 더해 2030세대를 보수로 포섭하면 진보 성향의 40대·50대를 포위) 역시 시대착오적인 계엄의 여파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안감을 투사하던 보수 진영을 달래기 위해 정책적 우클릭을 시도해 외연까지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선거 내내 주도권을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가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선 국면 초반부터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조어가 막판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완벽한 승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기 대선의 원인이 됐던 계엄 당일 이 대통령은 퇴근 후 오후 10시 30분께 인천 계양구 자택에서 계엄 소식을 접했다. ‘딥페이크’라고 웃어 넘겼다가 실제 상황이라는 사실에 민주당 텔레그램방에 “국회로”라고 썼고, 국회로 가는 차 안에서는 유튜브 생방송으로 시민들에게 “지금 국회로 와달라”고 호소했다. 대통령 이재명 탄생의 서곡이었다.
이후 탄핵소추안 의결, 탄핵 집회 참석, 헌법재판소 심판 등 헌정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정치 이벤트가 6개월 새 일어났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이 대통령이었다.
특히 민주당이 계엄 직후 대선 준비에 들어간 것과 달리 국민의힘은 탄핵 선고 전까지 4~5개월을 선거 준비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었고 후보 선출 뒤에도 후보 교체로 다시 시간을 허비했다. 보수는 분열됐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던 인사들이 선거를 이끌면서 ‘내란 종식’ 프레임에 반격이 어려웠다.
선거 후반 이 대통령 지지율 정체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조기 대선의 원인 제공이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끝까지 내란 종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규정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선거 프레임이 단일화로 전이되고 보수 결집이 일어나면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의 상승 국면도 있었다”며 “하지만 선거 종반 내란 세력이 복귀할 수 있다는 민주당의 투표 호소가 막판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대선에서 정책 선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공식 공약집마저도 역대급으로 늦게 제출됐다. 이 대통령은 사전투표 직전인 지난달 28일 공식 공약집을 냈고 김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이보다 이틀 앞서 자료를 공개했다. 19대 대선과 비교해도 10일가량 늦은 셈이다. 이처럼 정책 대결을 통한 전망적 투표가 사라지면서 보수 후보의 마지막 판세 뒤집기도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강우창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평가는 지난 대선과 총선 등을 거쳐 희석된 반면 김 후보는 윤석열 정권 장관으로 심판 대상인 데다 이준석 후보도 비전 제시보다 과거 발언과 이재명 검증에만 무게를 뒀다”며 “전망적 투표로 국면 전환을 모색해야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그렇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보수 인사 영입과 중도 우클릭 정책 행보도 이재명 승리의 한 축을 이뤘다. 민주당이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까지 장악할 경우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수 진영의 ‘이재명 포비아’ 전략은 이 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 보수를 품고 중도 우클릭 행보를 보이며 많이 희석됐다.
민주당은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보수 진영 인사들을 끌어들이는 데 집중하는 한편 이 대통령은 직접 자신을 ‘중도 보수’로 규정하고 보수 성격이 짙은 공약을 내는 등 ‘우클릭’ 행보를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특히 중산층을 겨냥해 상속세·근로소득세 등의 감세 정책 등을 내놓으면서 정책적으로도 주도권을 갖고 나갔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정책 공약을 말 바꾸기로 몰아세웠지만 효과가 약했다.
‘보수 적장자’를 자임하며 이탈하는 보수 인사를 껴안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이준석 후보가 막판 ‘젓가락 발언’으로 허우적거리면서 중도층은 이재명 후보로 더 기울었다. 지난 대선을 좌우했던 세대포위론이 힘을 받지 못한 이유기도 하다. 3년간 야당 대표를 지내며 ‘준비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한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60대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른바 진보 성향이 짙은 386세대가 60대가 되면서 진보층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결국 일부 세대와 지역으로 보수층은 한정됐고 이렇다 할 후보 경쟁력도 부각되지 않아 이 대통령 승리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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