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수사 권한이 확대되자 법무법인(로펌)들이 앞다퉈 ‘경찰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강력한 검찰 개혁을 공약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 내부에서 엑소더스가 이어지자 정부는 경찰의 취업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4일 서울경제신문이 인사혁신처의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올 들어 4월까지 취업 심사를 받은 경찰관 47명 중 절반에 가까운 21명이 법무법인 또는 기업 법무팀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김앤장·광장·율촌·화우·태평양 등 대형 로펌이나 카카오 등 대기업 법무팀에 지망했다. 로펌들의 경찰 스카우트 전쟁이 그만큼 활발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상당수는 직무 연관성 등을 이유로 불승인됐다.
국내 로펌의 경찰 출신 영입 기조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던 2020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경찰이 1차 수사 종결권을 확보하는 등 수사 권한이 확대되자 로펌이 경찰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며 형사 사건 전문성 강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2020년 252명 중 10명(4%)뿐이었던 법무법인 취업 신청 경찰관은 2021년 195명 중 45명(25%), 2022년 109명 중 47명(45%), 2023년 122명 중 54명(44.2%)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81명 중 27명(33.3%)이 로펌행을 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들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경찰관에 대한 영입 시도가 활발한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에는 고문·전문위원·이사 등 변호사 자격증 없이 자문 역할로 영입이 이뤄졌으나 경찰의 수사 영향력이 대폭 확대된 지금은 보다 전문성을 갖추고 형사 재판에 투입될 수 있는 인력 확보가 필요해졌다는 전언이다.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에서 취업 심사를 요청한 경찰관의 수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적게는 1명, 많게는 12명이었지만 지난해 20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4월까지 21명 중 10명이 변호사 자격증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경찰 출신 영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위 ‘5대 로펌’으로 불리는 곳들도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기준 로펌 취업 심사자 27명 중 17명이 김앤장·광장·세종·율촌 등 대형 로펌으로의 취직을 시도했다. 국내의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가지게 되면서 경찰 출신들을 형사재판에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간 검찰 출신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경찰 출신이 동일한 비율까지 올라오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검찰 개혁을 공약한 이재명 정부에서 추가적인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면 경찰의 권한은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경찰 엑소더스 현상은 앞으로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업무에 비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수사권 조정 등 정책으로 몸값이 올라가게 되면 탈출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경찰 내부에서 철저한 조직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고급 인력을 계속 로펌 등 사기업에 빼앗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공직사회도 이 같은 ‘경찰 엑소더스’ 현상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고 있다. 취업 심사를 담당하는 인사처는 경찰청과 협의해 취업 심사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설정하는 한편 취업제한 및 불승인 비율도 높이고 있다. 올해 들어 4월까지 변호사 자격으로 취업 심사를 요청한 10명 중 1명을 제외한 9명이 취업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마저도 1명은 카카오 사내 변호사로 취업을 신청해 성공한 것이며 예비 변호사로 로펌행을 예약한 9명은 모두 계획이 무산됐다.
한 경찰 고위급 관계자는 “최근 법조계에서 경찰 출신의 몸값이 높아지자 경찰 실무 경험을 단순히 ‘스펙’으로 활용한 뒤 로스쿨 입학을 위해 퇴직하거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로펌으로 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경찰의 입장을 인사처가 반영해 심사 기준을 까다롭게 설정하며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