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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공짜 점심은 없다

李대통령 선심 공약 다이어트 필요

간병비 급여화 등 국민의 부담 가중

인수위 없어 거품 걸러낼 기회 부재

아르헨·그리스 등 반면교사 삼아야

오현환 논설위원




“술만 사면 점심은 공짜.”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서부의 일부 술집들이 이런 이벤트를 내세워 손님을 끌었다. 처음에는 공짜 점심을 먹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람들은 실제로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점심은 공짜여도 술값이 비쌌고 음식은 짜서 더 많은 술을 주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는 격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경제학을 여덟 단어로 표현하면’이란 글을 기고하면서 이 격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돼 4일 취임했다. 보궐선거로 뽑혀 공식적인 대통령 권한 인수 절차 없이 곧바로 국정을 맡게 됐다. 선거 과정에 남발된 선심 공약들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을 통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추진돼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까 우려된다. 우리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극한 대립을 하면서 선거 때마다 선심성 공약 경쟁을 벌여왔다. 경제성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된 초대형 국책 사업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 정책의 표류가 대표적 사례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번 대선 과정에 적지 않은 공약들을 발표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이 대통령의 247개 국정 공약에 무려 210조 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간병비 급여화를 하려면 최대 15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아동수당 지급 확대와 농촌기본소득 지급을 시행하려면 각각 5년 동안 30조 원, 23조 원이 소요된다. 지역화폐 국고 지원 의무화도 대규모 재원이 들어가는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나라 곳간이 넉넉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D1, 중앙·지방 정부 부채)는 2018년 680조 5000억 원에서 지난해 1175조 2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6년 새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33.9%에서 46.1%로 급증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나랏빚을 무려 400조 원 넘게 늘린 영향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D1+비영리공공기관 부채) 비율이 올해 54.5%에서 2030년 59.2%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비기축통화국 11개국 가운데 체코에 이어 두 번째로 증가 속도가 빠르다. 또 비금융공기업 부채, 연금충당부채까지 포함한 국가부채(D4)는 더 크게 늘어난다. 특히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 기금 고갈에 이어 사학연금·국민연금 고갈까지 닥칠 경우 재정 건전성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 이런데도 연금 개혁은 경제협력기구(OECD) 주요 회원국들에 비해 훨씬 뒤처져 있다.



선심 공약으로 나라가 거덜났던 아르헨티나와 그리스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선거 때마다 무상복지 확대, 공공요금 동결, 환율 고정 등의 퍼주기 공약들이 쏟아졌다. 돈 풀기 정책으로 물가가 폭등했고 나라 경제는 엉망이 됐다. 결국 IMF의 구제금융으로 연명하다가 2023년 경제학자 출신의 하비에르 밀레이가 대통령에 당선돼 고통스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1981년 집권한 좌파 정권이 공무원 대폭 증원과 무상 교육·의료 등에 혈세를 마구 퍼부었다. 이에 따라 1980년 GDP 대비 22.5%에 불과했던 국가채무 비율이 1993년 100.3%로 치솟았고 결국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다. 두 나라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을 역사로 입증했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는 국민의 인권·자유·평등을 실현하는 최고의 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 사탕발림 공약을 쏟아낸 후보들이 당선 후에도 지지층을 의식해 무리한 공약을 강행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 압도적 다수당인 민주당이 국회에 이어 행정부까지 장악함으로써 포퓰리즘이 횡행할 여지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선거 공약은 이행하는 게 중요하지만 잊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공짜 점심’이 되레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이재명 정부가 표에 눈이 멀어 급조한 공약을 걷어내는 다이어트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저성장 극복에 필요한 구조 개혁 등 체질 개선을 외면하고 돈 풀기에만 치중하면 결국 미래 세대의 허리를 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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