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감세법안을 공개 저격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손절하고 나섰다.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한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삭제하는 등 화해 가능성을 내비치고는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만날 뜻이 없다”며 완강한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그간 서로에게 ‘자금줄’과 ‘정치적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던 만큼 결별의 대가가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 시간) NBC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머스크와의 관계가 끝난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잘라 말했다. 특히 머스크가 민주당 후보들을 후원할 경우 “매우 심각한 결과를 감내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날렸다. 지난달 말부터 머스크가 ‘트럼프 감세법안’을 두고 공개적인 비판을 하기 시작하면서 표면화된 두 사람의 갈등이 현재로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두 사람의 요란한 결별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짧은 기간 동안 서로의 영역에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지를 보여준다는 게 미 언론의 공통된 진단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미 국방부 등은 이번 충돌을 계기로 스페이스X의 대안을 찾아 나섰다. 나사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우주인을 보내거나 돌아오도록 할 때 쓸 수 있는 미국 우주선은 현재로서는 스페이스X의 ‘드래건’이 유일하다. 실제로 머스크는 5일 트럼프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공개 설전을 벌이면서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스페이스X의 드래건 우주선 철수를 즉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몇 시간 뒤에 철회하기도 했다. 나사 관계자는 “처음에는 두 사람의 말다툼이 재미있었지만 머스크가 드래건 철수를 언급하자 정말 무서워졌다”고 털어놓았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내년 중간선거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해 대선에서 약 3억 달러를 쏟아부어 트럼프의 재선에 기여했다. WP는 불화가 장기화할 경우 머스크의 지원 철회가 불가피하고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덩달아 공화당과 거리를 둘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렇게 될 경우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의회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머스크는 최근 “정치자금 지출을 줄일 계획”이라며 “미국 국민을 배신한 모든 정치인들은 내년에는 해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스크가 자신이 보유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론 공세를 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머스크는 X(옛 트위터)에 ‘미국에 중도 80%를 대표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때가 됐는가’라는 여론조사를 올렸고 약 200만 명 중 80% 이상이 ‘찬성’표를 던졌다. 머스크는 ‘트럼프를 탄핵해야 한다’는 게시물을 재인용하기도 했다.
머스크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와의 파국 소식에 테슬라 주가는 5일 하루에만 14.27% 급락하며 시가총액이 206조 원 증발했다. 이런 가운데 머스크의 인공지능(AI) 기업 xAI의 50억 달러 규모 대출도 이번 갈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xAI는 최근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50억 달러(약 6조 8000억 원) 규모의 대출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거래를 주도하는 모건스탠리는 xAI 대출 채권을 연 12% 금리에 액면가 그대로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려 했으나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투자자들이 더 높은 금리나 할인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귀화한 머스크의 체류 자격을 문제 삼을 수도 있고, 약물 사용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결별은 단순한 개인적 갈등을 넘어 트럼프 집권 연합체의 ‘구조적 균열’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뉴욕타임스(NYT) 수석정치분석가 네이트 콘은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때 기존 백인 노동 계층과 공화당 지지층에 더해 수백만 명의 젊은 층과 유색인종 유권자를 끌어들이고 기존 민주당 지지자 중 반(反)기득권 엘리트층의 상당한 지지도 확보해 광범위한 정치적 연합을 구축했다”며 “그러나 재임 5개월도 안 돼 정책 과잉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신호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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