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해에 태어난 1988년생 한국 여자골퍼들은 ‘골프의 황금세대’로 통한다. 지금도 뜨거운 활약을 하고 있는 신지애를 비롯해 박인비, 이보미, 김하늘, 김인경 등이 바로 ‘용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1988년생이다.
2013년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1승을 거둔 이일희(36)도 그 1988년생 중 한 명이다. 일찌감치 은퇴를 택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2018년 투어 시드를 잃은 이일희는 그래도 LPGA 무대를 떠나지 않고 1년에 두 세 차례 대회에 출전했다. 하지만 작년 3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고 올해도 US여자오픈에 예선을 거쳐 출전권을 따냈지만 역시 컷 통과에 실패했다.
세계랭킹 1426위까지 떨어진 이일희가 숍라이트 LPGA 클래식 첫 날 공동 선두(8언더파 63타)에 올랐을 때 누구도 그가 끝까지 선두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르다(미국)와 세계 2위 지노 티띠꾼(태국)이 출전했고 올해 막강 기세를 올리고 있는 일본 선수들도 대거 선두권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와이 아키에가 단독 3위(6언더파 65타)에 올랐고 바바 사키와 후루에 아야카 공동 4위(5언더파 66타), 그리고 사이고 마오와 다케다 리오는 공동 12위(4언더파 67타)를 기록했다. 공동 12위까지 19명 중 6명이 일본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9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 주 갤러웨이의 시뷰 베이 코스에서 끝난 대회 최종일 이일희는 3언더파 68타를 치고 단독 2위(14언더파 199타)로 대회를 마쳤다. 우승은 1타 앞선 제니퍼 컵초(미국)에게 내줬지만 대단하고 용감했던 준우승이라고 할 수 있다.
7번 홀까지 3타를 잃으면서 선두 자리를 내준 이일희는 후반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줬다. 9번 홀부터 3개 홀 연속 버디를 잡으며 다시 선두 경쟁에 뛰어 들었고 14번 홀(파4) 버디로 버텨내더니 17번(파3)과 18번 홀(파5)에서도 연속 버디를 잡는 뒷심을 발휘했다.
우승은 미국 선수가 차지했지만 이번 대회 ‘톱10’에 한국과 일본 선수가 나란히 3명씩 이름을 올렸다. 같은 톱10 이지만 순위는 한국 선수가 높다.
이일희가 단독 2위, 김세영이 단독 3위 그리고 임진희가 공동 5위다. 반면 일본은 후루에 아야카가 단독 4위, 사이고 마오와 야마시타 미유는 공동 5위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 기세를 꺾은 건 대한민국 30대 언니들이다.
32세 김세영은 이날 홀인원을 포함해 6언더파 65타를 치고 단독 3위(12언더파 201타)에 오르는 시즌 최고 성적을 냈다. 최근 3개 대회 연속 컷 탈락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선전이다.
전반 9홀에서 버디 3개를 잡은 김세영은 후반 11∼13번 홀 연속 버디로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14번 홀(파4) 더블 보기와 15번 홀(파3) 보기로 주춤하면서 순위가 크게 내려갔다. 의기소침할 상황에서 맞은 17번 홀(파3). 이날 76야드로 세팅된 이 홀에서 56도 웨지로 친 티샷이 그린에 한 차례 튄 뒤 그대로 홀로 사라졌다. 김세영은 마지막 18번 홀(파5)도 ‘2온 2퍼트’ 버디로 마무리하면서 후루에에 1타 앞선 단독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날 3타를 줄인 임진희는 공동 5위(10언더파 203타)로 올 시즌 세 번째 톱5 성적을 냈다.
비록 톱10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30대 K 언니의 힘을 보여준 두 선수가 더 있다.
공동 29위(5언더파 208타)를 차지한 박성현(31)과 이정은5(36)다. 일단 또 한 명의 1988년생인 이정은5는 이날 3타를 잃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노장의 힘을 보여준 경우다.
올해 앞선 7차례 출전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던 박성현은 이틀 연속 3언더파 68타를 치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2라운드에서는 이글 2개를 잡았고 이날도 버디 5개를 잡는 예전의 ‘버디 본능’을 되살렸다.
박금강이 지노 티띠꾼과 함께 공동 11위(9언더파 204타)에 올랐고 코르다는 이와이 아키에와 공동 15위(8언더파 205타)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