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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 유출 미수범 모조리 집유…'솜방망이 처벌' 이래도 되나

◆양형기준 강화에도 관대한 처벌

국가안보 위협하는 중대 범죄인데

피해 입증 안 되면 집유 판결 반복

방산 분야서도 가벼운 벌금형 그쳐

"경고성 차원 미수범도 엄벌해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기술유출 범죄 관련 양형 기준을 강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올 6월까지 법원의 선고를 받은 기술유출 사건 절반 이상이 미수범으로 결론나며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기술이 유출됐다는 정황이 입증되지 않거나 실제 피해 규모를 가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죄의 무게를 낮게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국가 핵심기술 유출이 국부 손실로 이어지는 ‘쓰나미’급 파장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경고성 차원에서 미수범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방위산업기술 보호법’ 위반 사건 중 2024년 7월 1일 이후 선고된 판결 24건을 분석한 결과 실제 유출에 실패한 ‘미수범’ 13건은 전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일부는 양형 기준 강화 전 기소된 사건이며 사법정보공개포털에 공개된 대법원 확정 전 사건들이다.

미수범들의 집행유예 사유는 대부분 ‘피해 규모 불명확’ ‘유출 정황 불충분’ 등으로 나타났다. 기술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형량이 대폭 경감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법조계는 기술을 유출하려는 시도 자체의 위험성보다는 실제 피해 발생 여부가 양형 판단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면서 미수범을 엄벌할 수 있는 제도적 기준 자체가 부재한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구체적 사례를 보면 수원지법은 지난해 11월 반도체·배터리 기술 자료를 보관한 채 경쟁사로 이직한 피고인 2명에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들은 회사 서버에서 수십 건의 설계 자료를 내려받아 e메일과 외장형 저장장치로 전송했지만 피해 규모가 수치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형을 면했다.

화장품 소재 원료 분석표 87건을 USB에 담아 반출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원지법은 “유출되기 전 회수돼 실질적 피해가 없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역시 전자부품기업 퇴직자가 설계도면 300건 이상을 외장하드에 저장해 반출한 사건에서 “실제 사용이나 외부 유출 정황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실형을 유예했다.



올해 2월에는 주요 군사기밀이 유출될 위험이 있었지만 이를 시도한 이들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국방기술품질원 연구용역에 참여한 예비역 출신 피고인들이 군사기밀을 포함한 연구 결과물을 무단 저장한 사건으로 일부 피고인이 동종 전과를 보유했음에도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더 가벼운 처벌도 있었다.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방위산업체 퇴직자가 군사 기술 관련 영업비밀 2건을 외장하드에 보관한 사건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외부 유출 정황이 없고 장기간 단순 보관에 그쳤다는 이유였다. 기술 보호를 가장 강조하는 방산 분야에서도 피해 입증이 안 되면 실형은커녕 벌금형에 그치는 실태를 드러낸 셈이다.
현행 양형 기준은 살인죄를 제외하면 대부분 범죄에서 미수범에 대한 별도 기준이 없다. 지난해 7월 ‘지식재산·기술침해범죄 양형 기준’이 대폭 강화되면서 국가핵심기술 유출 시 최대 징역 12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는 기수범(범죄가 실제로 일어나 완성된 경우)을 기준으로 형량을 정하고 있다. 기술이 실제로 외부에 유출돼 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강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어 유출을 시도하다 적발된 경우에는 형량을 무겁게 정하기 어려운 구조다.

기술유출 범죄를 다루는 법률들은 미수범도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은 ‘해외 유출 목적’ 등 특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국내 기술 침해나 내부 반출에 대해서는 미수범 처벌 규정이 미비해 국내 유출 시도에 대한 억제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문제는 기술유출 범죄가 해마다 조직·지능화되면서 적발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피해 규모 산출과 입증 책임이 수사기관과 피해 기업에 있어 기술유출 사범을 재판대에 올리더라도 실형을 선고받도록 하기 쉽지 않다.

기술의 성격이나 산업적 가치와 무관하게 ‘결과가 없으면 가볍게 끝난다’는 판례가 누적될 경우 기술보호 현장에서의 경각심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피해 입증이 안 됐다”는 이유로 집행유예에 그치는 판례가 계속 쌓이면 이는 유사 범행을 부추기는 잘못된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술유출은 시도만으로도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범죄”라며 “미수범에 대한 명확한 양형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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