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출신 노동자를 ‘고수익 일자리’로 유인한 뒤 강제 입대시키는 ‘취업사기’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러시아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고임금 공장 노동’ 등의 채용 광고를 내세워 사실상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내몰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메룬 출신 장 오나나(36)는 “러시아 샴푸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갔다가 군사 훈련을 받게 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5주간의 군사 훈련 뒤 전쟁터로 보내졌고, 같은 장소에는 짐바브웨·방글라데시·브라질 출신 외국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세네갈 출신 말릭 디오프(25)는 러시아 유학 중 “식기세척 일로 월 5700달러(약 772만원)를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입대했다가 최전선으로 끌려갔다. 그는 탈영 후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돼 진실을 털어놨다.
일부 외국인은 속임수에 당했다기보다 높은 급여를 노리고 자발적으로 입대한 경우도 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카메룬 현지 부사관 월급은 67파운드(약 11만원)에 불과한 반면, 러시아군 입대 시 1500파운드(약 260만원)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카메룬 군인은 자신의 급여 명세서를 SNS에 올리며 “(높은 급여 때문에) 러시아에 가서 죽는 걸 선택했다”고 밝혔다.
카메룬 현지 SNS에서는 러시아로 떠난 뒤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 가족을 찾는 게시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카메룬 정부는 군인의 무단 출국을 막기 위해 해외 출국 규제에 나섰다.
러시아는 군수품 생산에도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군이 모스크바 동부 옐라부가 산업단지의 드론 공장을 폭격했을 당시, 이곳에서 일하던 아프리카 출신 여성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이들 역시 높은 급여만 믿고 취업했지만, 자신들이 무기 제조 현장에 투입됐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슷한 사례는 인도·네팔 등 아시아권에서도 포착됐다. 지난 1월 로이터 등 외신은 러시아군에 복무 중인 인도인 가운데 최소 12명이 사망했고 18명이 여전히 복무 중이라는 인도 외무부 발표를 전했다. 네팔 정부 역시 지난해 자국민 수천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이민자나 유학생 비자 만료를 빌미로 “군에 입대하지 않으면 강제 추방된다”는 협박까지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인권단체들은 러시아가 사실상 현대판 ‘징병형 인신매매’를 자행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현재까지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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