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과학기술계에서 중국 논문 피인용 횟수가 10년 만에 8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논문 피인용 횟수는 연구의 질적 수준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단순히 논문을 많이 발표하는 수준을 넘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중국 논문을 실제 연구에 광범위하게 참고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중국은 최근 3년 연속 논문 피인용 세계 1위를 기록 중인 가운데 2위 미국과의 격차까지 매년 벌리고 있어 세계 과학 연구의 중심축이 중국으로 이동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11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표한 ‘2024 과학기술 논문성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중국은 73만 477편의 논문을 발표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43만 2589건으로 2위에 머물렀다. 주목할 점은 논문의 양이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21년부터 논문 피인용 횟수 기준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21년 당시 중국의 논문 점유율은 18.68%로 미국(15.17%)과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2023년에는 중국발 논문의 피인용 횟수는 144만 건으로 74만 건을 기록한 미국의 2배에 달했다. 점유율에서도 각각 22.83%, 13.52%로 격차를 더 벌렸다.
2009~2013년 388만 건이었던 중국의 피인용 횟수가 2019~2023년에는 3306만 건으로 약 8.5배 급증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같은 기간 미국의 증가율은 0.7배에 불과해 중국이 세계 연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10년간 국가별 상위 1% 고인용 논문 보유 현황에서도 중국은 6만 5715건으로 2위를 차지해 미국(7만 6478건)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특정 분야에 편중돼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응용과학과 기초과학 전 분야에 걸쳐 눈에 띄는 연구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2023년 기준 ‘표준 분야’ 논문 수 상위 10개 전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표준 분야란 각국의 연구 성과를 비교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정한 22개 학문 영역을 말한다. 생명과학·공학·수학·물리·화학 등 과학기술 전반을 포함한다.
이 중에서도 재료과학 분야 성과가 압도적이다. 2023년 기준 중국의 재료과학 분야 논문 점유율은 무려 51.7%에 달했다. 해당 분야에서 발표된 논문의 절반 이상이 ‘중국발’이라는 의미다. 재료과학은 금속·세라믹·고분자·반도체 등 다양한 소재의 구조·성질·가공·응용을 연구하는 분야다.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항공우주 등 전 산업의 핵심 기술 기반을 이룬다. 중국은 2021년 발표한 ‘14차 5개년 계획’에서 핵심 기초소재의 자립을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왔다. 핵심 소재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안정화 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덕분에 최근 중국은 신소재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성과를 내고 이를 네이처·사이언스 등 다양한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성과는 초라하다. 한국은 2023년 논문 발표 수에서 세계 12위에 머물렀다. 피인용 횟수도 3년 연속 11위로 정체하고 있다. 연구개발(R&D)에 대한 양적 투자는 지속되고 있지만 국제 과학계에서 주목받는 ‘결정적 연구’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중국 논문의 질적 수준이 미국을 추월하며 상당히 약진했다”며 “학술 논문은 중장기적으로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연구뿐만 아니라 기술 경쟁력에도 의미 있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생명과학 분야가 상대적으로 피인용 수가 낮고 공학·컴퓨터과학 등은 피인용 수 향상이 두드러지는 만큼 관련 분야의 기초연구 지원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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