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의존, 폭음과 같은 음주 문제가 조현병, 우울장애 등 정신장애와 유전적 연관성을 갖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명우재 분당서울대병원 정밀의료센터(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원홍희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교수, 김재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강사가 참여한 공동 연구를 통해 알코올 의존과 정신질환이 유전적으로 연결된 복합질환임을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
음주 문제는 단순한 알코올 소비를 넘어 △조절력 상실 △사회·직업적 기능 저하 △신체·심리적 피해 등 여러 문제를 동반한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음주가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조현병, 우울장애 등 다양한 정신장애가 함께 나타날 뿐 아니라 이들 질환의 임상 경과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여러 연구를 통해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 사이의 유전적 관련성이 제기됐지만 그 관계를 규명할 정확한 유전변이를 밝혀지진 않았다.
연구팀은 다인종 43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GWAS) 데이터를 활용해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의 공통된 유전적 구조와 원인 유전자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GWAS는 사람의 유전체 전반에 걸친 유전변이를 조사하고 음주, 흡연 등의 행동 특성이나 조현병, 우울장애 등 특정 질환과 연관된 유전자를 찾는 분석 기법이다.
분석 결과 음주 문제는 조현병과 73%의 공통된 유전변이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성식욕부진증(거식증)과는 65%, 자폐스펙트럼장애와는 60%, 양극성장애와는 50%,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와는 46%, 우울장애와는 39%의 공유 수준을 보였다. 이는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가 단순히 생활습관이나 환경적 요인을 넘어 공통된 유전적 기반 위에서 발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강한 유전적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이들 두 질환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전자 후보들을 좁혀 나간 결과 ‘TTC12’와 ‘ANKK1’이라는 유전자가 공통 원인임을 밝혀냈다. 두 유전자는 도파민 시스템을 조절하는 요소로 충동 조절이나 보상 시스템과 같은 뇌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음주 문제나 정신장애에 대한 표적치료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가 독립된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정밀의료 기반의 맞춤형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명 교수는 “많은 정신장애 환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음주를 선택하지만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이번 연구는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를 동시에 겪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제의 새로운 기전을 제시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규모 유전체 분석 데이터와 최신 통계기법을 활용해 복합 질환 간 유전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했다”며 “이 같은 연구 방향은 다양한 질환 간 유전적 연관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관계를 고려한 최적의 치료법 개발에도 상당 부분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SCI(E)에 등재된 국제학술지인 ‘미국정신의학저널(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최근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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