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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트럼프의 파괴에 침묵하는 재계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옛날 옛적 미국의 재계 총수들은 종종 익숙한 불평을 늘어놓으며 정부 정책에 거리낌 없이 비판을 쏟아냈다.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이반 세이덴버그는 “정부가 사실상 경제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손을 뻗으면서 시장에 불확실성을 주입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시스코시스템스의 전임 CEO인 존 체임버스도 “경제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며 거들었다. 이들의 발언은 모두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나왔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일생에 한 번 경험할까말까한 글로벌 재정위기로부터 미국 경제를 건져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완전고용과 저인플레의 시기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불확실성의 쓰나미를 몰아왔다. 깜짝 발표후 연기되었던 관세는 재가동됐고 관세율마저 두배로 늘어났다. 이처럼 종잡기 힘든 관세 정책에 재계 지도자들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켄 그리핀, 래리 핑크, 제이미 다이먼 등 몇몇 거물급 인사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

과거의 경우 재계 지도자들은 기업세 인상에 늘 볼멘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관세 형태로 부과되는 새로운 세금에 기업 총수들은 대체로 침묵했다. CEO들 가운데 상당수는 수입 상품에 매겨진 관세 때문에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말조차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새로 50%의 관세가 붙는 철강을 예로 들어보자. 이처럼 높은 관세로 철강산업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업과 건축업 등 수입 철강을 사용하는 기업들은 철강산업 분야의 일자리 한 개가 보전될 때마다 175개의 일자리를 위협받는다. 이에 대해 자동차 제조사나 건축회사 CEO들의 불평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전혀 듣지 못했다.

예산안을 둘러싼 위선에 관해 생각해보라. CEO들은 오래 전부터 예산적자의 위험성에 관해 떠들어댔다. 그럼에도 앞으로 10년간 국가부채에 5조 달러의 적자를 추가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예산안에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CEO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예산안의 수치를 꼼꼼히 살펴보면 재정적자를 줄일 유일한 방법은 메디케어와 국방비 등 가장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2017년 단행된 트럼프 감세를 종료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크고, 아름다운 예산안’은 메디케어 지출의 고삐를 당기지 않은 것은 물론 국방비를 증액하고 감세규모도 대폭 확대했다.



업계는 경제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예산안에 격분해야 마땅하다. 세금에 대한 최선의 관행은 간단하고 공정한 룰을 유지하고 이들을 모든 납세자들에게 동등하게 적용해 왜곡, 우회와 회계조작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에는 팁 혹은 초과근무수당에 과세하지 않고 노인들과 자동차 대출이자에 대해 공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따라서 연소득이 5만 달러인 웨이터는 세금감면을 받지만 식기세척을 담당하는 주방직원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초과근무수당을 제공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세금감면을 받지만 이들에 비해 급여가 적어도 초과근무수당을 신청할 수 없는 직종의 종사자에게는 동일한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소득을 팁과 초과근무수당으로 재분류하는 근로자들의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비당파적 기관인 택스파운데이션이 지적하듯 이러한 혜택은 시행될 경우 수 백 쪽의 국세청(IRS) 해설지침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조건과 가드레일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 복잡한 작업을 해내야 하는 IRS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체 인력의 40%가 잘려나간 상태다. 이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법망을 빠져나가는 세금 사기가 기승을 부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미국 경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정치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과 마텔 같은 개인기업을 상대로 관세위협을 가한다. 최근 그는 머스크 소유 업체들과 체결한 정부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 특혜를 원하는 기업총수들은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직접 요청하라고 말한다.

트럼프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수 억 건의 개별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크고 복잡한 자유시장시스템이 아니라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상점이다. 그는 “내가 상점의 주인”이라며 “나는 이곳에서 장을 보는 고객들이 지불해야 할 물건의 가격을 책정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기업 지도자들은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아부하는 과거 제3세계 독재자들을 대하던 방식으로 미국 대통령과 거래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큰 반대 없이 이같은 새로운 모델에 적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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