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한 언론인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인구·경제·사회 등 많은 안건과 국가 통계를 다뤄본 경험에 비춰볼 때 인공지능(AI) 시대에 데이터는 원유라고 봐야 하느냐, 아니면 하이웨이(고속도로)로 간주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는 말이다.
“데이터는 새로운 원유”라는 표현은 2006년 영국의 수학자가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용한 말이다. 이후로는 2차 산업혁명 시절 석유가 중요한 자원이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데이터가 경제성장과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데이터를 자원으로 보면 그 가치를 따지고 어디에 쓰이는지 살피게 된다. 국제사회에서도 생산의 한 요소로서 자본이나 노동력과 같이 데이터의 가치를 측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데이터 하이웨이’라는 비유가 더 적절하다. 데이터는 네트워크로 연결될 때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아우토반은 실제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누구나 고속도로 하면 아우토반을 떠올리는 것은 현대 자동차 문화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아우토반은 단순 직선 고속화 도로가 아니다. 주변과 어우러지는 완만한 커브, 교량과 다리를 놓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최초의 네트워크 도로였다.
하이웨이의 핵심은 자유롭게 흘러 원하는 목적지에 빠르게 닿는 것이다. 초 단위로 쏟아지는 ‘데이터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데이터는 찾기 어렵다. 찾았다 해도 여러 경로를 거쳐야 접근할 수 있고 사용하기도 어렵다면 그 데이터를 근거로 한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AI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의 위치와 찾아갈 수 있는 열린 경로와 정보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해 AI 모델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도 뒷받침돼야 한다. 단지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AI 대전환을 통한 AI 3대 강국 도약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그 일환으로 AI 데이터센터를 확충해 전국을 잇는 AI 고속도로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AI 고속도로는 AI 개발과 서비스에 필요한 막대한 데이터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초고속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AI 고속도로가 깔리면 제조업·의료·물류·금융 등 전 산업 분야에서 AI 도입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공장의 생산라인은 더 똑똑해지고 신약 개발 속도가 빨라지는 등 산업 전반의 혁신을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도로가 연결돼 있어도 달리는 자동차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AI 강국으로 나아가려면 AI 인프라 구축을 넘어 AI 산업 생태계 조성이 필수적이다. 수많은 개발자와 스타트업들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AI 모델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 전반에 AI 수요가 창출돼야 한다. AI의 핵심 연료라고 할 수 있는 고품질 데이터도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정부는 공공 데이터를 적극 개방해 AI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공공 부문이 마중물이 돼 AI 수요를 창출해나갈 계획이다. AI 생태계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도 정비할 계획이다.
20세기 독일은 아우토반을 통해 자동차 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21세기 한국이 AI 강국이 되려면 데이터 아우토반을 건설해야 한다. 정부 혼자 할 수 없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