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물가 인상 주범을 찾기 위해 분주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라면값 2000원’ 발언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과는 달리 대선 직후 발표된 소비자물가는 안정적인 수준이었다. 통계청이 이달 4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9% 상승했다. 올해 1~4월 2.0~2.2% 수준을 보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처음으로 1%대에 진입한 것이다.
물가가 내림세를 보이며 간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정부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급박하게 물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명확한 ‘물가 주범’을 지목하기 어려웠던 만큼 정부는 눈에 불을 켜고 대책 마련이 필요한 품목들을 꼽아내기 시작했다. 라면뿐 아니라 산지 가격이 인상세를 보인 계란,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수입이 중단된 브라질 닭, 산지 가격이 뛴 쌀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땅한 물가 주범을 찾지 못한 정부는 결국 전반적인 물가 안정세를 강조하고 나섰다. 정부 관계자들은 새 정부 물가 정책 방향성에 대해 “특정 품목을 겨냥한 대책으로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 “전반적인 물가 수준을 낮추는 방향으로 고민 중”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실상 명확한 방향성이 없다는 고백에 가까웠다.
결국 정부는 전날 물가 대책을 발표했지만 그간 지속해온 대책들을 되풀이한 수준이었다. 이달 말 종료 예정이던 유류세 인하를 연장하고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46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21개 식품에 대해서는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물가 주범을 찾지 못한 만큼 새로울 것 없는 정책이다. 산지 가격이 오른 계란, 브라질산 닭고기 등 특정 품목에 대한 수급 대책은 대통령의 발언이 없더라도 준비될 정책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민생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안정세에 접어든 물가를 굳이 언급하며 불안심리에 불을 붙일 이유는 없다. 관가에서는 “2000원짜리 라면은 특이 사례에 불과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물가 대책을 위해 보다 차분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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