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공격 ‘최종 명령’만을 남겨둔 가운데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 이란은 이스라엘의 병원 등 민간 시설 등을 각각 타격하며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교전 1주일째인 19일(현지 시간) 이란 국영 TV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250㎞가량 떨어진 혼다브 지역의 아락 중수로에 공습을 가하며 이란의 핵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이어갔다. 이스라엘군은 전투기 40여 대와 100발이 넘는 탄약을 동원해 테헤란을 비롯한 아락에 위치한 중수로 기반 플루토늄 생산 시설을 공격했으며 나탄즈 지역에 자리한 ‘핵무기 개발 시설’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란은 아락 중수로가 핵에너지 연구 용도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이란이 이곳에서 원자폭탄의 노심 제작에 쓰일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이란도 이스라엘에 수백 기의 미사일과 드론을 날려보내며 반격에 나섰다.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과 드론 대부분은 이스라엘 방공망에 의해 격추됐지만 일부는 방공망을 뚫고 텔아비브의 고층 건물과 이스라엘 남부의 병원 등을 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AFP통신은 공습경보 사이렌이 이스라엘 전역에 발령됐으며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등지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남부 베르셰바에 위치한 소로카 병원은 이날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여러 명이 다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구조 당국은 이날 이란 공습으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최소 24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병원 피격 소식을 접한 뒤 X(옛 트위터)에 “테헤란의 폭군들이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라며 보복을 다짐했다.
양측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미군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이란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춘 상태다. 다만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참전에 대한 최종 결정을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8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란을 공격할지 안 할지 아무도 모른다” “시한 도래 1초 전에 최종 결정을 하고 싶다. 특히 전쟁 상황은 변하기 때문”이라며 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승인했지만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지 보기 위해 최종 공격 명령을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고위 참모들에게 밝혔다고 전했다. 이란 역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이스라엘과의 휴전 및 이란 핵 프로그램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회담을 수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최후의 결전을 다짐하며 항전 의지를 밝혔지만 물 밑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외교 라인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라그치 장관은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영국과 프랑스·독일 외무장관과 핵 문제 관련 회담을 앞둔 것으로 전해졌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18일 중동 오만에 도착한 이란 대통령 전용기 등 정부 소속 항공기에 미국과의 핵 협상에 참여할 이란 협상단이 탔을 가능성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이란 공격에 나서기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콘크리트 지지층 사이에서 나오는 ‘전쟁 회의론’이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중동 전쟁을) 다시 할 수는 없다”며 “이는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가 세력의 상당수는 미국이 과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에 개입해 큰 성과 없이 소모전만 한 전례를 들어 이란 사태에 개입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남은 임기 내내 중동 이슈에 휘말릴 것이며 대중국 견제 정책도 힘이 빠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오후 전화 통화를 하고 중동 지역의 긴장 완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시 주석은 “충돌이 격화되면 당사국들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 국가들도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고, 푸틴 대통령은 “이란 핵 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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