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에서 자웅을 겨루는 설상 종목은 빙상에 비해 약세로 평가돼왔다. 동계올림픽 유력 메달 후보는 대부분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 등 빙상에서 나왔다. 내년 2월 열리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종목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채운(19·경희대)의 존재감 때문이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한국 최연소(만 15세) 출전 선수로 이름을 알린 이채운은 2023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최초 금메달을 목에 건 데 이어 2024 강원 동계유스올림픽 2관왕, 올해 2월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굵직한 업적을 달성하며 강력한 올림픽 챔피언 후보로 스노보드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최근 경기 광주의 실내 훈련장 언바운드에서 만난 이채운은 이 같은 주위의 기대에 “부담되지 않고 더 힘이 나는 것 같다”는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남겼다. 그는 이곳에서 트램펄린을 이용해 훈련하고 있다.
이채운은 여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스노보드에 입문했다. 가족끼리 스노보드를 함께 타는 게 소망이던 아버지는 너무 어렸던 이채운 대신 여섯 살 위 형을 데리고 스키장을 다녔다. 그 모습이 부러웠던 이채운은 아버지에게 자기도 가고 싶다고 떼를 썼고 그렇게 스노보드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기량이 급성장한 이채운은 열살 때부터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지금의 이채운을 만든 데는 아버지의 공이 크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께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현재 이채운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시즌이 끝난 3월 말에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기 때문이다. 이채운은 “정상 몸 상태의 80% 정도 올라온 것 같다”며 “올림픽 개막 전까지 최고의 경기력을 찾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회복과 훈련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채운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 3연패’다. 남자 스노보드의 전설 숀 화이트(미국·은퇴)도 작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화이트는 2006 토리노, 2010 밴쿠버, 2018 평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하프파이프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2014 소치 때는 4위에 그치며 올림픽 3연패를 놓쳤다. 이채운은 “올림픽 3연패를 이루고 멋있게 은퇴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이 때문에 구체적인 은퇴 시기도 세 번의 올림픽을 마무리하는 32세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2026·2030·2034 올림픽을 마치면 28세이지만 선수 생활은 좀 더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일단 약 7개월 여 앞으로 다가온 밀라노 대회에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비시즌인 여름에 얼마나 훈련을 체계적으로 하느냐가 겨울의 성패를 결정한다. 이채운이 재활과 함께 고강도 훈련을 병행하고 있는 이유다.
그가 ‘필승 카드’로 준비한 기술은 ‘프런트사이드 트리플 콕 1620’(앞 방향으로 회전축을 세 차례 바꾸며 4.5회전)이다. “세계 최초로 성공한 이 기술을 포함해 갖고 있는 기술들을 모두 성공한다면 올림픽 메달은 문제없다고 본다”는 설명.
하프파이프에는 스코티 제임스(호주), 히라노 아유무, 도쓰카 유토(이상 일본) 등 세계적인 강자들이 즐비하다. 이들을 모두 꺾어야만 올림픽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오른다. 이채운은 “여러 국제 대회에서 만나 한 번씩은 이겨본 상대들”이라며 “물론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채운은 다음 달 초 일본 훈련과 8월 호주 설상 훈련을 시작으로 올림픽 챔피언을 향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가장 큰 무대인 올림픽에서 최고의 플레이로 꼭 정상에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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