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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체 공동 행위를 허용하는 이유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대법원은 4월 컨테이너 선사의 공동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적용 여지가 없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신고하지 않은 공동 행위와 부당한 운임 인상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운사가 실제로 공동 행위가 미신고한 것인지, 부당한 운임 인상을 했는지에 대해 법리 논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는 무역서비스 확대를 위해 해운 공동 행위를 허용하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정기선 협약(라이너코드)을 국내법에 도입했고, 현행 해운법 제29조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해운 공동 행위를 명시적으로 허용한 특별법을 두고 있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갑자기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제재한 것이다. UNCTAD 정기선 협약은 경쟁 심화 시장에서 선사의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하고 화주의 경쟁적 정기선 서비스가 유지되도록 하는 해운동맹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2008년 운임 공동 행위에 대해 독점금지법 적용 면제 제도를 폐지했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운임 공동행위에 대한 경쟁법 적용 면제 제도를 폐지하는 추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EU의 이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경쟁법 적용 제외 제도를 폐지하거나 외항 해운 분야를 경쟁법 적용 대상으로 결정한 국가는 전혀 없다.

유럽은 정기 컨테이너선 해운 분야에서 세계 1·2·3·5위의 선사를 보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선주국이다. 1·2위 선사가 각각 660만 TEU, 460만 TEU의 수송 능력을 보유한 반면 국내 연근해 선사 10곳의 총 수송 능력이 50만 TEU에 못 미치는 점으로 미루어볼 수 있듯이 유럽 선사들은 이미 동맹이나 공동행위가 필요 없을 만큼 거대화했다. EU는 이에 해운동맹을 인정해 중소선사들을 생존시키는 것보다 초대형 선사가 시장을 주도하도록 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EU가 해운동맹을 불허하면서 선사 간 극심한 경쟁이 발생한 결과 초대형 선사만 생존했고, 해운시장의 과점화가 촉발됐다. 결과적으로 운항 항차수와 운항 회수 감소 등 운항 서비스의 하락, 해상운송 서비스 차별화의 감소, 기항항만 수의 감소, 선박 운항 지연의 증가 등 화주에 대한 해운 서비스가 악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면 대표적인 화주국인 미국은 외항해운개혁법(OSRA)에 “해운 동맹은 승인된 또는 효력있는 협약을 추구하는 선사들의 연합체로 이들은 조율된 활동을 할 수 있고 공동의 요율을 활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많은 선사들이 참여하는 해상운송 경쟁 시장을 유도하는 편이 화주에게 유리한 운송시장을 만드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국토교통성 역시 2016년에 경쟁법 적용 제외 제도의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외항 해운과 관련해 여러 나라가 경쟁법 적용 제외 제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안정적인 국제 해상수송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법을 적용하는 등의 선제적 조치가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과 인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 및 뉴질랜드와 캐나다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도 선사 간 공동행위에 대한 경쟁법 적용 제외를 계속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선사들은 해운법에 의한 공동 행위를 통해 불황에도 존속할 수 있었다. 한국-동남아항로는 선사 간 공동 행위로 해운 불황기에 극심한 출혈 경쟁을 막아냈고 한·일항로와 한·중항로는 공급 조절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해운동맹에 의해 여러 영세 선사들이 운항을 지속할 수 있었다. 많은 선사들이 생존한 덕에 우리 수출입 화주들은 경쟁적 해상운송시장에서 유리한 조건의 운임과 선박 운송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임담합으로 제재하고 있는 우리 근해 중소선사의 경우 수송 능력을 모두 합쳐도 유럽 1개 선사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중소 국적선사들의 공동행위를 제재해 해운 국제 경쟁력을 저하시키면 외국 초대형선사만 도와주는 일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안은 해양수산부가 지난 30년에 걸쳐 인정해 온 해운사 공동 행위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운임 담합으로 제재하면서 촉발됐다. 산업적 측면을 강조해 예외적으로 공동 행위를 허용한 해운법과 예외 없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원칙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사이에 명백한 모순이 발생한 만큼 해양수산부와 공정위가 부처 간 협의와 협력을 통해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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