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주한미군 규모 및 역할 조정을 검토하는 가운데 미 연방의회가 이런 움직임을 금지할 법적 제동 장치 부활에 나섰다. 주한미군 감축을 시도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견제 장치라는 해석과 의회가 주한미군 감축의 길을 열어 준 것이라는 해석이 동시에 나와 주목된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방침에 대한 미 의회의 의중에 따라 1950년 이후 주도하고 있는 한반도 내 주한미군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11일(현지 시간)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26표, 반대 1표로 가결 처리했다.
군사위가 공개한 요약본을 보면 법안은 “한반도에서의 미국 군사 태세의 축소나 연합사령부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국방부 장관이 의회에 보증하기 전까지 그런 조치를 금지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합참의장과 인도태평양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에게 주한미군 축소나 전작권 전환 등의 변화에 대한 독립적인 위험 평가를 하도록 지시하는 내용도 담겼다.
주목할 대목은 ‘국방부 장관 보증 전 미국 군사 태세 축소나 전작권 전환 금지’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9~2021 회계연도에도 등장했지만 당시에는 주한미군 규모를 명시하고 국방수권법 예산을 주한미군 감축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 중 한국 부담분) 5배 인상을 요구하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자 의회가 단속에 나선 것이다.
이번 2026 회계연도 NDAA 초안도 표면적으로 보면 미 의회가 행정부 차원의 결정으로 주한미군을 줄이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견제로 볼 수 있다. 앞서 올 4월 공화당 소속인 로저 워커 상원 군사위원장과 군사위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 상원의원은 군사위 NDAA 청문회에서 주한미군 축소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초안은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의회의 우려를 반영하는 것 같으면서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일정 부분 여지를 남긴 ‘조건부 유연성’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거꾸로 감축 가능한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분석한다. 국방장관 보증 없이 주한미군을 줄이지 못한다는 말은 국방장관이 보증하고 의회가 협조할 경우 감축이 가능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의회 양원 모두 여당인 공화당이 다수당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의회가 오히려 명분만 갖추면 지지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사무총장은 “장관과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은 적절한 방안이 생긴다면 감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관건은 5년 전에 있던 주한미군 규모 하한선과 감축 시 예산 지출 불가 조항이 법안에 다시 포함되는지 여부로, 이 내용이 담기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방침에 의회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현재 공개된 상원 군사위 초안 요약본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
NDAA는 연방정부에 국방 예산 집행 권한을 부여할 목적으로 미국 의회가 매년 가결하는 연례 법안이다. 상·하원 각각의 의결과 합동위원회의 단일안 조문화, 양원 단일안 재의결, 대통령 서명 등 절차를 거쳐 통상 연말쯤 법률로 확정된다. 행정부가 의회 승인 없이 주한미군 규모를 감축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은 2019 회계연도에 처음 반영됐다.
하원 군사위는 15일(현지 시간) 토론을 거쳐 표결로 위원회안을 결정한다. 미 상·하원 군사위원회안은 상·하원 본회의에서 추가 수정과 투표를 통해 확정된다. 따라서 아직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하원 협상위원회를 거쳐 조정안이 마련되는 연말께 최종 법안이 확정돼야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는 미 의회의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미국에서 더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며 “(주한미군 감축설에 대한 국방부 입장이) 달라진 것은 없다”고 답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