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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하루] 서태후의 죽음과 청의 폐막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청나라의 몰락은 단순히 거대한 한 나라의 쇠락이 아니었다.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황제를 정점으로 한 중화제국의 쇠락이자 고대 문명부터 지속된 중대한 문명의 몰락을 의미했다. 중국을 오랫동안 문명의 중심으로 믿었던 조선인에게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은 청을 망하게 한 인물로 서태후(자희태후)를 꼽는다. 서태후는 거의 반세기 동안 청을 사실상 통치했던 청 황실의 마지막 최고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의 측천무후처럼 여성 황제로 등극하지 않았지만 청의 제9대 황제 함풍제의 후궁이자 이후 추존황후였으며 제10대 황제 동치제의 어머니이고 제11대 황제 광서제의 큰어머니였다. 제12대이자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부의)의 큰친할머니였던 서태후는 사실상 함풍제 이후의 황위 계승과 정치의 최고 결정권자나 다름이 없었다. 그 유명한 양무운동·변법자강운동·의화단운동, 그리고 마지막 신정(新政)은 모두 서태후 없이는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그녀의 영향력은 음양으로 막대했다.



그런 서태후가 1908년 11월 15일 사망했다. 그리고 3년 후인 1911년 청은 신해혁명을 통해 완전히 무너졌다. 놀라운 것은 서태후가 죽기 하루 전인 1908년 11월 14일 광서제가 3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따라서 서태후는 광서제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마자 두 살짜리 부의를 차기 황제로 임명한 다음 날 사망한 셈이 된다. 이 과정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실제 발굴된 광서제의 유해에 대한 과학자들의 2007년 화학 검사 결과 유골에서 정상인의 2000배에 달하는 치명적인 비소 성분이 발견됐다. 죽음을 직감한 서태후의 마지막 작품일 것이라는 설은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개연성이 높은 시나리오가 됐다.

여성인데다 청이 쇠락하는 시기의 권력자였다고 해서 그를 악마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의 권력욕과 정무적 감각의 한계로 인해 청 후기 중앙 차원의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근대화를 이뤄내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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