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 실천 서약서 작성하기, 기후변화 포스터 만들기.'
이달 10일 서울 송파구 A 중학교의 한 1학년 교실에서 어른들에게는 다소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학생들은 태블릿 PC로 생활 속 환경 보호 다짐을 담은 서약서를 작성하거나 온라인 협업 플랫폼 '패들렛'에 직접 제작한 포스터를 업로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얼핏 보면 일회성 행사 같지만 엄연히 교육감 승인을 받은 '기후변화와 우리' 과목 시간이다.
바로 옆 교실에서는 '나를 알고 함께하는 성장' 교과목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돌아가며 발표했다. 학생들은 가족사진, 키링, 강아지, 졸업앨범 등 가지각색의 사진을 패들렛에 업로드한 뒤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어서", "가장 큰 지지가 되어주는 존재라서" 등 자신의 가치관이 담긴 이유를 공유했다.
올해 1학기부터 ‘학교자율시간’이 시행됨에 따라 앞으로 전국 곳곳의 초·중학교에서 이처럼 특색 있는 과목들이 더 많이 등장할 예정이다. 학교자율시간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으로 각 지역, 학교의 여건과 학생 필요에 따라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 시수의 일부를 활용해 국가 교육과정 외에 새로운 과목(교육감 승인 과목)을 개설·운영하는 시간이다. 올해는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운영되며 내년에는 1~2학년, 2027년에는 전학년으로 확대된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이번 학기부터 학교자율시간을 도입하되 시행 여부와 과목 선택 등은 각 학교에 자율적으로 맡겼다. 현재 서울 내 개설된 과목은 총 22개다. 교사들이 직접 설계한 ‘프로그래밍과 인공지능 로봇’, ‘모두의 학교 공간 디자인’, ‘짝 토론과 사회 참여’, ‘나를 알고 함께하는 성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타 학교에서 개발한 과목을 채택해도, 직접 만든 과목을 가르쳐도 상관 없다. 모든 학습 자료와 교육과정안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와 교육정보 종합망 에듀넷 등을 통해 공유받을 수 있다. 다양성 확보를 위해 과목 종류는 현재 22개에서 추가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이달 12일부터 과목 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중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교자율시간 운영을 위한 과목 개발 직무연수’를 운영하기도 했다. 교육청은 총 15시간에 걸쳐 교육감 승인 과목 개설 방법 및 개설 실습·실제 과목 개발 및 운영 사례·교과용 도서 및 학습자료 개발 등을 교육한다.
교실 현장에서는 학교자율시간에 ‘맞춤형’ 교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한 뒤 긍정적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주요 학군지에 속한 A중의 경우 미래 핵심 어젠다인 ‘기후 위기’ 학습과 더불어 자신의 가치관을 탐색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나를 알고 함께하는 성장' 과목을 선정했다. A중 교사 원유미씨는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가 심한 편인데다 할 일에 치여 자신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 교사들의 의견이었다"며 “아이들의 반응도 긍정적일 뿐더러 교사들 역시 평소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정식 과목이 아니라 가르치지 못했던 것을 지속적·체계적으로 수업할 수 있어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A중 재학생인 이동규(16)군 역시 “그동안 접한 적 없는 새롭고 다양한 정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면서 “앞으로 경제나 AI 같은 다른 과목도 개설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