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최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올린 초호화 결혼식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참석한 글로벌 슈퍼리치와 유력 인사들의 행보까지 연일 보도됐다. 이를 두고 반응은 엇갈렸다. “자기 돈을 자기가 쓰는 것이고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는 시각과 “아무리 부자라도 특정 도시 전체를 사유화하는 듯한 과시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맞섰다. 부유층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늘 양가적이다. 부러움과 거부감, 찬사와 불신이 동시에 존재한다.
부자에 대한 관심과 논란은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다. 빅테크의 부상으로 슈퍼리치가 최근의 자본주의적 현상처럼 느껴지지만 귀도 알파니 보코니대학교 경제사 교수에 따르면 그들은 인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했던 부류다. 그의 신간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미래의창 펴냄)’는 중세 유럽부터 오늘날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부자들이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방식으로 부를 정당화하며 사회와 긴장 관계를 형성했는지 치밀하게 추적한다. 알파니는 책에서 “모든 시대에 걸친 부자들의 전반적인 역사”를 살펴보는 작업을 시도한다.
저자는 교수답게 우선 부자의 기준부터 정의한다. 고대에는 연극을 보며 저녁을 먹고 음악을 들으려면 집에 악사와 요리사가 있어야 했고 이는 오직 왕족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생활은 평범한 사람도 향유할 수 있다. 절대적 부를 기준으로 삼자면 현대인들은 모두 부자라는 역설이 된다. 이에 저자는 풍요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적 격차라는 점에서 ‘상위 1%’ 또는 ‘상위 0.01%’가 부자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기준이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중세 봉건시대 부자들은 주로 왕족이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땅과 특권을 상속받거나 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 결혼을 통한 가문 결합도 흔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대서양 무역로가 개척되고 국제 상업이 발달하면서 상인과 금융인이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업적 기회를 포착해 부를 일궈냈지만 오히려 당시 종교와 문화는 이들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부자는 하느님의 구원에서 멀어진 죄인으로 여겨졌고 지나친 부의 과시는 위험한 정치적 존재로 간주되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과 자본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부자 계층이 탄생했다. 존 록펠러, 앤드류 카네기, 제이 굴드처럼 철강, 석유, 철도 산업에서 부를 축적한 기업가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이들 중 다수는 한 세대를 지나며 정치 권력에 접근하거나 귀족 가문과 혼인을 맺으며 상류 사회에 통합되었다. 기업가로 시작했지만 결국 ‘가문’이 된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시대마다 부의 축적 방식이 달라졌지만 슈퍼리치가 등장하는 일맥상통하는 구조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꼭대기에 올라간 이들은 남다른 혁신을 이뤄낸 동시에 시대적 운도 함께 따랐다는 것이다. 상업혁명, 산업혁명, 서부개척시대 등과 같이 시대의 배경 없이는 부의 축적도 불가능했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반대로 흑사병이나 세계대전과 같은 거대한 충격은 부의 집중을 무너뜨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자산이 파괴되며 부자들의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또다시 슈퍼리치의 시대다. 정보통신 기술, 자유무역 체제, 글로벌 조세 회피 구조 등은 새로운 억만장자들의 등장을 촉진했다. 금융위기, 코로나 바이러스 등 충격 속에서도 오히려 슈퍼리치들의 부는 줄어들지 않고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더욱 늘고 있다. 알파니는 과연 이러한 부의 집중이 지속 가능할지 묻는다. 1914년 기준 미국의 상위 1%는 전체 부의 44.1%를 소유했지만 대공황과 전쟁을 거치며 1970년대에는 10%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부의 집중도는 2000년에 32%, 2020년에는 35.5%까지 다시 올라왔다.
저자는 슈퍼리치들이 다수로부터 환영받는 존재가 되려면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공동체의 신뢰를 얻기 위해 부를 ‘보여주되 나누는’ 전략을 택했지만 지금의 부자들은 자산을 은폐하거나 ‘선의의 기부’로 책임을 갈음하고 있다. 그러나 부가 사회의 신뢰를 잃는 순간 부의 균열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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