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웬만한 문제는 척척 맞추고 사람처럼 대답하는 챗GPT의 등장에 전 세계 교육계는 충격에 빠졌다. ‘인공지능(AI)이 작성한 내용을 숙제로 제출하면 부정행위 아닌가’ ‘AI 사용을 막아야 할까, 가르쳐야 할까’ 등 질문이 쏟아졌지만 해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의 일부 교육기관들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AI를 교육에 사용해도 될까’보다는 ‘AI로 학생들의 사고력과 학습 경험을 어떻게 확장시킬까’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캘리포니아주립대(CSU)다. 이 학교는 올 2월 오픈AI와 협력해 챗GPT Edu를 공식 도입했다. 다만 AI를 곧바로 전체 수업에 적용하는 대신 교수들이 먼저 실험적으로 수업을 설계해보고 그 결과를 분석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적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 단순한 신기술 채택이 아닌 교육 목적이 중심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책임 있는 사용, 디지털 격차 해소, 교수 중심의 도입 설계, 교과별 학습 효과 분석과 같은 원칙도 명확히 세웠다. 특히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보다 ‘왜 사용하는가’를 먼저 고민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또 다른 사례는 애리조나주립대(ASU)다. 학생들은 AI와 상호작용하면서 사고를 확장하는 방식의 수업을 받는다. AI는 단순히 정답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개별 학생의 수준에 맞춘 설명과 반문·비유를 통해 더 깊은 이해로 유도하는 지적 파트너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쓰는 문제가 아니라 수업을 설계하는 관점의 변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초중고 학교로도 퍼지고 있다. 생성형 AI에게 뉴스 기사를 초·중·상급 등 수준별로 나눠 요약하게 하거나 학생 실력에 맞춰 수학 문제의 난이도를 자동 조절하는 시스템이 시범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학생 개개인에게 맞춘 학습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다. 특히 이달 8일 미국교사연맹(AFT)은 오픈AI·마이크로소프트·앤스로픽 등 주요 생성형 AI 회사들과 함께 협력해 뉴욕에 AI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미 전국 교사들의 AI 문해력(리터러시)을 강화하기 위한 교사 재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을 발표했다.
생성형 AI가 답을 쉽게 알려주는 시대에는 학생들이 그 답을 분석하고 질문하며 스스로 사고를 확장하도록 교사가 이끄는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또 이런 도입은 천천히 신중하게 다층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파일럿 수업부터 시작해 교사와 학생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교육 공동체 내에서 토론을 거친 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생성형 AI는 교실을 자동화하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교실을 더 풍부하게 설계할 기회를 제공하는 도구다. 학생에게는 수준에 맞는 개별화된 학습 경로를, 교사에게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수업 설계가 가능하게 지원한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AI를 막을지, 말지가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 어떤 배움의 경험을 설계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먼저 준비된다면 생성형 AI는 교육에 있어서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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