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잠이 줄어요. 대체 왜 그럴까요?”
노년층의 상당수가 이 같은 고민을 갖고 있지 않을까.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밤잠을 설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같은 시기엔 더욱 공감을 얻을 만한 사연이다. 나이가 들며 수면시간이 변하는 것은 뇌 기능 변화와 생체리듬 조절 능력의 저하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화와 함께 멜라토닌 분비가 감소하면서 잠드는 시간이 빨라지고, 새벽에 일찍 깨어나는 현상이 나타난다. 임희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수면의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며 "8~9시간을 자도 피곤하다면 수면의 질을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면의학 전문가인 임 교수의 도움말로 '노년기 꿀잠을 위한 과학적 비법'에 대해 살펴보자.
수면장애는 단순히 잠을 못 자는 것을 넘어, 수면 중 이상행동이나 일상생활 장애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문제다. 국내 65세 이상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수면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일주기 리듬 장애가 있다.
불면증은 스트레스, 우울감, 통증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한다. 잠을 잘 자야 한다는 강박, 수면 실패에 대한 불안이 오히려 수면을 방해한다. 이럴 때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것이 수면제다. 하지만 수면제는 단기적인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 복용 시 인지저하, 낙상 위험, 기억력 장애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널리 사용되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수면제는 치매와의 관련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따라서 수면제에 의존하기보다는 비약물적 접근이 필요하다.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수면 위생’ 실천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하기, 낮잠 자제, 자기 전 전자기기 사용 줄이기, 알코올 섭취 제한, 밝은 햇빛 노출 등은 누구나 실천 가능한 기본 수칙이다. 수면을 억지로 시도하지 않는 ‘청개구리 작전’도 불면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
일주기 리듬 장애도 노년기에 흔하게 발생한다. 특히 ‘전진성 수면위상장애’는 잠드는 시간이 빨라지고 새벽에 일찍 깨는 현상으로, 단순 불면증으로 오해하기 쉽다. 이 경우 수면제보다 저녁 시간대 활동을 늘리고 밝은 빛에 노출해 생체시계를 조절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수면무호흡증도 경계해야 할 질환이다. 코골이와 함께 호흡이 멈추는 이 질환은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심뇌혈관질환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진단할 수 있으며, 양압기 치료는 현재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특히 하루 4시간 이상 꾸준히 사용할 경우 혈당 및 혈압 조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들수록 수면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삶의 질을 해친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면제보다는 수면위생 실천과 함께 생체리듬 조절을 먼저 시도해보자. 필요하다면 수면클리닉 상담을 통해 건강한 수면을 회복할 수도 있다.
늦은 나이에도 활기찬 삶을 위해서는 ‘잘 자는 법’을 배우는 것이 우선이다. 단순한 ‘잠 부족’이 아닌 뇌 건강과 연결된 문제임을 인식하고, 오늘 밤부터라도 수면 습관을 하나씩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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