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는 전략 자원이다. 전략 자원이라 하면 흔히 석유·희토류처럼 국가 안보와 직결된 자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식량안보의 관점에서 보면 지하수는 분명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최근 식량안보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기후변화와 식생활 변화다. 기후변화는 농업에 필요한 물의 안정적인 확보를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해만 봐도 가뭄에 이어 극한 호우와 폭염이 잇따르며 안정적인 물 공급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소비자의 식탁이 채소·과일 등으로 다채로워지면서 농업 생산의 구조적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농가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시설 농업에 집중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식생활 변화라는 이 두 흐름은 ‘연중 지속 가능한 물 공급’이라는 과제로 이어지며 그 해답으로 ‘지하수’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하수는 비나 강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저장된 물이다. 지표수와 달리 햇빛과 높은 온도에 증발하지 않으며 자연 여과 과정을 거쳐 수질도 우수하다. 무엇보다 계절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물을 이용할 수 있어 시설 작물 재배에 적합하다. 하지만 모든 자원이 그러하듯 지하수 역시 무한하지 않다. 언제든지 고갈될 위험이 있으며 지하수 사용이 늘어나면 그 위험은 더 커질 수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지하수의 전략적 가치를 일찍이 인식하고 안정적 비축과 효율적 활용을 위한 기반 마련에 힘쓰고 있다. 1980년 강원 속초를 시작으로 전국 5곳에 지하수 댐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지하수 댐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주관 기관으로 선정돼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공사는 ‘비축’에서 ‘확보’로 지하수 관리 패러다임을 확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이 바로 ‘지하수 함양 사업’이다. 지하수 함양은 하천수와 같은 지표수를 지하에 인위적으로 주입한 뒤 필요시 다시 꺼내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용한 물은 처리 과정을 거쳐 지하로 주입하기 때문에 지하수 고갈 방지는 물론 재사용까지 가능한 실질적인 해법이다.
지하수 함양 사업의 효과를 처음 검증한 곳이 바로 경남 진주에 있는 단목지구다. 이곳은 2000여 동의 시설하우스가 밀집한 시설 농업 단지로 인근 하천에서 자연 여과된 지하수를 활용해왔다. 하지만 강에서 떨어진 배후 지역일수록 지하수 확보가 어려워 만성적인 물 부족 문제를 겪어왔다.
이에 공사는 지하수 함양 사업을 추진해 하루 8700톤 규모의 물을 지하로 주입하고 활용할 시설을 구축했다. 그 결과 배후지 농업 활동에 필요한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으며 겨울철에는 미리 비축한 물을 활용해 등유 보일러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난방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런 성과를 토대로 공사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올해부터 2038년까지 전국 21개 물 부족 시설 농업 단지에서 지하수 함양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기후와 식생활 변화는 우리 농업이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대적 흐름이다. 변화에 적응하고 식량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는 지하수를 농업의 핵심 전략 자원으로 인식하고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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