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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하루] 표류로 인한 대운하 ‘여행’의 행운

조영헌 고려대 사학과 교수

<표해록> 표지.




지금도 중국의 남북을 연결하는 대운하를 따라 여행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남쪽의 경제 중심지 항저우에서 출발해 중국의 대표적인 하천인 창장강과 황허강을 가로질러 북쪽의 정치 중심지 베이징까지 도달하는 약 1800㎞의 인공 수로 여행이다. 과거 명·청 시대에 배를 타고 이동할 경우 2∼3개월 혹은 그 이상이 걸렸다.

조선 시대에 연행사로 명과 청의 수도인 베이징으로 간 조선인들은 많지만 대운하를 이용해 강남 지역까지 모두 둘러본 기회를 잡은 이는 거의 없었다. 사실상 유일한 기록 보유자이기도 한 조선인은 관원 최부(1454~1504)였다. 그가 항저우에서 베이징까지를 경유하며 남긴 ‘표해록(漂海錄)’은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3대 중국기행기로 꼽힌다.



금남 최부 선생 영정


그런데 최부는 본래 중국의 대운하 여행을 원해서 갔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하지 않던 표류를 당했기에 대운하 기행이 가능했다. 발단은 1488년 음력 윤정월 3일(양력 2월 24일)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출항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제주에서 추쇄경차관으로 근무하던 최부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풍랑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주로의 출항 명령을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최부 일행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13일간의 표류 끝에 중국 남부 저장성 해안에 표착했다.

온갖 고초 끝에 조선의 표류민임이 밝혀진 최부는 명 관리들의 호송을 받으며 항저우에서 배를 타고 대운하를 이용해 베이징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랬기에 15세기 후반 베이징의 많은 물자와 사람들을 보고도 놀라기보다는 “그 풍성함이 쑤저우와 항저우에는 미치지 못할 듯합니다”라면서 수도의 번성이 모두 강남의 풍요가 대운하를 통해 이식된 결과임을 알아차렸다. 표류로 인해 대운하를 여행할 수 있었던 행운의 결과지만 중국인보다 더 자세한 묘사와 비교를 보여준 최부의 예리한 관찰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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