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오산에서 전세사기 행각을 벌여 송치된 인물들이 해당 범행으로 얻은 자금을 발판으로 삼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오피스텔 분양 사업을 벌이며 또다시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사기성 분쟁이 반복되며 피해가 확산되는 흐름이다.
2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22년 10월 준공된 강남 H 오피스텔은 3년째 잔금을 완납한 계약자들에게 소유권 이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의 납입 금액은 소형 호실의 경우 3억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해당 오피스텔은 대부분이 사실상 공실로 방치된 상태다. 피해자 A 씨는 “시행사가 환불도 거부한 채 지금도 강남역 인근에 분양 현수막을 내걸고 신규 계약자를 끌어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추가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이번 입주 지연 사태를 두고 ‘분양 사기’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통상 강남 도심에서 준공까지 끝난 오피스텔의 입주가 수년째 지연되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는 수개월 내 사용 승인과 소유권 이전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밖에 오피스텔 시행사인 ‘T산업개발’ 대표 임 모 씨 남매는 분양 대금을 자기 계좌로 받은 뒤 일부만 신탁사에 전달하는 편법을 쓴 정황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들에게는 자신이 소유한 건물을 매각하거나 은행 대출이 곧 실행돼 환불이 가능해진다고 수차례 둘러댔다. 또 다른 피해자는 “지금도 ‘열흘만 기다리면 돈이 나온다’고 설명하고 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이미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해 전세금을 빼돌린 전례가 있다. 경기 오산경찰서는 올해 초 임 씨 남매를 포함한 5명을 타인 명의 부동산을 활용해 사기를 벌인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남매는 2021년 5월부터 약 3년간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수십 명의 전세금을 편취했다. 범행 과정의 일명 ‘삼행시’ 수법으로 유명해졌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들은 부동산 명의자 이름의 머리 글자로 단체명을 꾸며 계좌를 만들었다. 세입자는 이를 집주인 계좌로 착각해 보증금을 보냈다. 예컨대 ‘윤다영’이라는 이름에 맞춰 ‘윤리적인 다문화 연구회’ 명의 계좌를 사용하는 식이었다.
남매가 직접 소유한 건물들에 대해서는 경찰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형사 고소 대신 민사 매매 대금 반환 청구 소송 등을 통해서만 대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애초부터 피해자들을 속이려는 의사로 계약이 체결됐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려운 가운데 변호사 선임 비용도 만만찮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사례까지 합산하면 임 씨 남매에 의한 피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부동산 분양·전세 사기 사태가 신규 계약 위축을 불러 또 다른 미지급 피해를 낳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오피스텔은 건축법 적용을 받는 업무 시설로 분류돼 주택법상 분양보증 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구조적 사각지대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오피스텔 거래는 보증 장치가 취약한 만큼 계약 전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전세 시장도 올가을부터 매물 부족으로 가격 상승이 예상돼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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