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 사업을 위해 설립된 지방문화원에서 원장의 자금 사적 유용 등 비리가 적발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지방문화원이 연간 운영비의 75%가량을 국비와 지방비 등에서 지원받고 있는 만큼 체계적인 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시군구에 설치된 지방문화원은 230여 곳에 달한다.
2일 서울 강남구에 따르면 강남구청은 최근 강남문화원에 보조금 3356만 원을 환수 조치한다고 통보했다. 이는 외부 제보에 따라 강남문화원에 대한 감찰을 실시한 결과 손 모 원장의 부적절한 자금 수령 등이 적발된 데 따른 것이다.
강남구청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강남문화원은 손 원장에게 지난해 상여금, 강사료, 출연료, 회의 수당 등으로 3695만 원을 지급했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재직 중인 손 원장에게 이들 자금이 부적절하게 지급됐다는 게 강남구청 측 판단이다. 감사 과정에서 손 원장은 본인 제자들에게 대리 강연을 시키고 정작 본인이 수강료를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손 원장은 또 기부 금액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며느리와 제자 등에게 16회에 걸쳐 260만 원을 지급했다. 며느리의 인사 청탁을 들어주는가 하면 사적 단체에 187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도 당진문화원 A 원장의 기부금품법 위반, 보조금 횡령 등 사실이 당진시 감사 결과 적발됐다. 가평군 역시 사적으로 보조금이나 공유재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등 횡령·배임 혐의로 가평문화원 A 원장과 법인을 지난해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문제는 전국 232곳이 운영 중인 지방문화원이 이른바 ‘깜깜이’ 운영으로 비리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각 시도별로 매년 수십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지만 감독은 지방문화원으로부터 자금 집행 시 사업 수립 계획서나 결과를 보고받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조례에 따라 회계연도마다 지방문화원이 사업계획 등을 시장이나 도지사에게 제출하게 돼 있지만 검증이나 확인까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작 감찰은 외부 제보 등이 있어야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시 권역 내 25개 지방문화원은 103억 원의 지방비와 153억 원의 국고를 지원받았다. 지방비(63%)와 국고(12%) 등 해마다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지만 비리 등 적발을 위한 감사는 말 그대로 ‘사후 약방문’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비와 구비를 지방문화원에 지원할 때 예산집행 관련 계획을 보고받고 반기당 한 번 씩 정기적 회의를 통해 공유받는다”면서도 “앞으로 보조금이 부적정하게 집행되지 않도록 보조 사업자 교육 등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지방문화원 실정에 밝은 한 관계자도 “문화원장에 당선되기만 하면 많게는 수십억 원의 자금을 마음대로 집행할 수 있다”며 “소수 인력으로 운영되다 보니 문화원장의 재량권도 커 치열한 경쟁을 통해 2선, 3선까지도 쟁취해낸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원장 취임 찬조금으로 수천만 원씩 받고 사돈의 팔촌까지도 인사 청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지방문화원의 경우 인건비를 받는 인력은 평균 3.8명으로 사무국장을 포함한 직원이 3명 이하인 경우가 전체의 54.5%를 차지한다. 소수로 운용돼 문화원장의 재량 범위가 터무니없이 넓고 쓸 내부 자금은 해마다 국비 등으로 지급되다 보니 비리와 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방문화원이 사단법인이기는 하지만 자치구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이 매년 투입되고 있는 만큼 공정한 보조금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보조금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고 했다. 아울러 보조금 사용 내역을 공개하는 등 지자체의 보조금 관리 시스템을 보다 엄격히 해야 한다고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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