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우리 안의 작은 차이가 상대방과의 차이보다 크겠냐”며 불거진 당내 갈등 수습에 나섰다. 전날 발생한 민주당 ‘투 톱(정 대표, 김병기 원내대표)’의 공개 충돌이 이재명 정부 출범 초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여권 내 우려가 확산하자 서둘러 봉합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 대표를 비롯한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당내 여론을 장악한다는 비판이 내부에서부터 터져나오면서 집권 여당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이자 동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구체적으로 대상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김 원내대표를 향한 화해의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그는 “당장은 우여곡절이 많은 것처럼 보여도 결국 역사는 하나의 큰 물줄기로 흘러간다”며 “우리는 더 큰 어려움도 이겨냈다”고 단합을 강조했다. 전날 “정청래는 사과하라 그래”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던 김 원내대표 또한 이날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수습 국면으로 들어섰다.
확전은 피했지만 당내 긴장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날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화해의 메시지와 달리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정면만 응시하면서 감정 싸움의 여진을 연상케 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언제나처럼 바로 옆자리에 앉아 회의를 했지만 공개회의 내내 서로에게는 눈길을 한 번도 주지 않았다. 김 원내대표는 정 대표가 전날 제안한 저녁 식사 제안에도 응하지 않은 걸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하루 만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당내에서는 취임 후 줄곧 강경 노선을 고집해온 정 대표의 리더십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의 꾸준한 협치 주문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가 강성 당원들의 입장만 대변하면서 취임 한 달여 만에 당내 피로감이 상당히 쌓였다. 친명계 한 의원은 “야당일 때의 대표와 집권여당 대표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의 힘이 가장 큰 정부 출범 초기에 각종 이슈를 정 대표가 주도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이 대통령이 아닌 정 대표가 받고 있다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추석 밥상에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 이 대통령이 내놓은 민생 정책이 올라야 하는데 정 대표가 ‘추석 전 개혁 완수’만 외치면서 자리를 차지했다”며 “지금은 대통령의 시간”이라고 했다.
강경파를 견제하는 당내 불만의 목소리도 공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온건한 입장을 내비치면 곧장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비하 표현)’으로 몰려 비난 세례를 받게 되는 부담 속에서도 비정상적인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당내 논쟁이 시도되는 모습이다.
최근 위헌 논란 속에서도 추진되고 있는 내란특별재판부(또는 내란전담재판부)에 대해 판사 출신인 박희승 민주당 의원이 공개 반대 의견을 낸 게 대표적이다. 그는 8일 “국회가 나서 법원을 공격하고 법안을 고치는 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계엄을 발동했던 것과 같다”고 작심 발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의원은 당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유튜버 김어준 씨를 공개 저격하면서 논쟁에 불을 지폈다. 당직자 출신인 한 의원은 “불편하더라도 논쟁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게 민주주의의 본질이고 민주당의 강점”이라고 지적했다.
당내에서는 당과 정부의 단일대오를 굳게 다지기 위해서라도 정 대표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야당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당내에서 분란 조짐이 보이면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여당과 정부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당 운영이 당원들의 강경한 주장에만 좌지우지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정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 대표의 강성 행보가 이 대통령이 나서기 어려운 ‘궂은일’을 대신하는 이원화 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른바 ‘굿캅·배드캅’ 전략이라는 것이다. 검찰·언론 개혁 등 당청 간 갈등 우려가 불거질 때마다 이 대통령이 결국 정 대표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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