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해양주권을 책임지는 해양경찰청 지도부가 붕괴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최근 고(故) 이재석 경사 순직 사건에 책임을 지고 해양경찰청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서열 1·2·3위가 모두 공석이 됐다. 가을 성어기를 맞아 불법 외국 어선을 단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치안 공백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해경에 따르면 전날 김용진 해양경찰청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김 청장은 “순직 해경 사건 관련 대통령의 말씀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 사건의 진실 규명과 새로운 해양경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청장의 사의 표명은 올 2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임명된 지 7개월 만이다.
김 청장의 사표가 수리된다면 해경은 서열 1위 해경청장(치안총감)부터 2위 차장(치안정감)과 3위 기획조정관(치안감) 등 지휘부가 모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해경 차장직은 올 2월 김 청장이 해경청장으로 승진하면서 공석이 된 후로 반년 넘게 메워지지 않고 있다. 차장 권한대행을 맡아오던 서열 3위 안성식 전 조정관은 12·3 비상계엄 가담 의혹으로 이달 1일 직위 해제됐다.
문제는 가을 성어기를 맞아 연안 치안 활동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지휘부에 공백이 생기면 제대로 된 단속이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 어선 불법 조업 단속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큰 상황이다. 해경에 따르면 서해의 경우 10여 년 전부터 연평균 200~300척 이상의 중국 어선이 출몰해 불법 조업을 일삼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해경이 나포한 중국 선박은 약 2300건에 달한다. 2016년 10월 7일 인천 옹진군 소청도 남서방 76㎞ 해상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단속에 나선 인천해경 고속단정 1척을 고의로 들이받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때문에 김 청장의 사표는 당분간 수리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 김 청장의 사표가 수리되면 지휘 체계상 경무관 계급의 본청 경비국장이 ‘청장 대행의 대행의 대행’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이렇게 될 경우 계급상으로는 상급자인 해경 수사국장(치안감)이 하급자의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등 지휘 체계에도 혼선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정부는 차기 청장 인선을 서두르기 위해 해경 고위 간부들의 인사 검증서를 이날까지 제출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차기 해경청장 하마평에는 현재 치안정감 계급의 오상권 중부해경청장, 치안감 계급의 김인창 본청 수사국장, 이명준 서해해경청장, 장인식 남해해경청장, 김성종 동해해경청장 등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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