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당국의 사전 검열과 체포, 가택 연금, 출국 금지 등 탄압에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 그는 2000년 ‘써클’로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2015년 ‘택시’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칸영화제에서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석권한 첫 아시아 감독이 됐다. 그가 30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1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파나히 감독은 “누구도 영화 제작을 막을 수 없으며 영화 제작자들은 언제나 (영화를 만들)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스크립트 등을 당국에 제출해 검열을 받아야 하고 해외 제작·배급사들과 협업하지 않는 이상 영화 제작을 비롯해 영화제 출품도 어렵다. 이런 어려움에도 끝까지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그는 2009년 반정부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6년 형을 선고받았고 20년 간 출국, 영화 제작 등을 금지당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집이나 차 안에서 또는 화상 연결 방식을 활용해 계속 영화를 만들었고 영화를 담은 USB를 밀반출하는 방식으로 세계 영화계와 소통했다. 2022년 7월에는 앞서 선고된 6년형을 다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체포됐고 옥중 단식 투쟁을 하다가 2023년 2월 풀려났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그저 사고였을 뿐’은 그가 감옥에서 완전히 풀려난 뒤 만든 첫 영화다.
이 작품은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 부문에 초청됐는데 공동 제작사가 있는 프랑스에서 출품했다. 이란 정부가 아카데미 영화상 출품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사고였을 뿐’은 프랑스와 공동 제작한 작품이어서 아카데미에 출품할 수 있었다”며 “저와 같은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연대하고 모여서 이런 문제에 직면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탄압에도 끊임없이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으로는 아내를 꼽았다. 그는 “제가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 아내가 저를 버릴지도 모른다”며 “반드시 제가 영화를 만들어야 아내를 지키고 결혼을 유지할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파나히 감독은 자신을 ‘사회적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20년 간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아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섰던 경우도 있다”며 “영화를 만들지 말라고 했지만 집 안에서, 혼자라도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당시에 제 내면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서 저와 제가 속한 사회를 돌아볼 수 있었다”며 “내면에 있는 모든 아이디어가 영화의 소재였다”고 덧붙였다.
파나히 감독과 부산국제영화제와의 인연은 길고 각별하다. 첫 장편 영화인 ‘하얀 풍선’으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고 이후 여러 작품을 부산에서 선보였다. 그는 특히 고(故)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파나히 감독은 “이번에 한국 초청을 받고 제일 먼저 기억났던 사람이 김지석 프로그래머였다”며 “그는 제 영화들을 좋아해 줬고 제가 출국 금지로 이란을 떠날 수 없을 때 방문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에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 방문해 관광객의 시선으로 부산을 보게 될 것 같다”며 “한국의 해산물, 음식 때문에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파나히 감독의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은 다음 달 1일 한국에서 최초 개봉한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예매 1분 만에 매진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인 한국 관객들에게 그는 “이 영화를 보는 건 시간 낭비가 아닐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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