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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송현] 보이스피싱 범죄와 무과실책임주의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기관 보상케 하면 범죄 더 기승

대출금리 인상 등 사회적 비효율 초래

정부, 책임회피 말고 근절책 찾아야





정부와 여당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금융권이 보상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책임이 없는 금융기관이 피해를 보상하게 하는 대책은 보이스피싱 사기가 더 기승을 부리게 할 뿐이다. ‘무과실책임주의’가 종종 현대적 법리로 포장되지만 범죄에 대한 무과실책임주의는 범죄를 막고 범죄자를 검거해야 할 정부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인기영합주의적 정치가 무분별하게 무과실책임주의를 적용하려는 모습을 보여 더 큰 사회적 피해가 우려된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은밀하게 진행된다. 범죄자는 피해자를 자신들이 만든 틀에 가둔다. 덫에 걸린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금융기관을 속이고 결국에는 피해를 본다. 범죄자는 피해자를 포획하기 위해 가족과 지인들의 위급 상황을 연기하거나 대출을 미끼로 삼는다. 또 권력기관을 들먹이며 겁을 준다. 범죄자가 잡혀도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막막하다. 잡힌 범죄자는 연락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피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속성에 대응할 수 있는 근본적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과거 정책 방향을 반성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부는 임기응변식으로 사회적 부담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했는데도 범죄는 기승을 부리고 피해액은 늘었다. 지난해 8545억 원이던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올해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대포통장을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통장 개설 규제가 시행됐으나 불법은 근절되지 않았다. 본인 확인 절차에 이중 삼중의 규제를 강화했지만 피해자가 범죄자들에게 포획돼 자금 인출을 막는 것은 속수무책이었다. 지연 이체 제도로 입학이 취소되기도 하고, 단기간 다수 계좌 개설 제한 규제로 학교 지정 계좌 개설이 거절되기도 했다. 그동안 애꿎은 국민만 금융 서비스 이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금융기관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구축하고 본인 확인 의무를 강화해도 범죄의 본질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대포폰을 근절한다고 통신사에 책임을 지도록 했지만 그런 대책도 범죄를 막지 못했다. 사회적 부담을 늘리기보다 근원적 범죄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 기관을 사칭하는 경우가 전체 보이스피싱 범죄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사람들이 정부 기관은 어떤 경우에도 금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50% 이상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정부는 외국과의 공조 수사를 강화하는 방안과 함께 국내 연락책을 근절하는 방법은 없는지 검토해 개선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노력에 한계가 있다면 불필요한 규제는 폐기하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험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금융 계좌 및 휴대전화 가입자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국고로 환수되는 범죄 수익 몰수·추징액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활용해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도 있다.

과실책임주의는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과실에 책임을 부과해 과실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기제다. 과실이 없는 사람이 책임지는 사회는 각종 범죄로 지옥이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대책은 도덕적 해이와 대출금리 및 수수료 인상 등 다양한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정부는 힘없는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관계 기관들과 협력하며 책무를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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