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우파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취임으로 동북아시아 외교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아베의 후계자’ ‘일본판 트럼프’로 불리는 일본 첫 여성 총리의 등장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일본 정치, 동북아 국제질서의 근간을 뒤흔들 중대 사건으로 평가된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는 경제적으로는 ‘아베노믹스’를 계승하고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도 강한 일본을 지향하면서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등 주변국과 마찰을 빚을 우려가 제기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대우교수는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카이치 정권은 한마디로 아베 신조 정치의 완벽한 부활”이라며 “외교·경제·안보 모든 면에서 아베 노선을 계승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한일 관계를 연구해온 호사카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는 앞으로 과거사·영토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에서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며 “이재명 정부는 한일 관계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국익을 위한 ‘실용 외교’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정부의 등장이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앞으로 양국 간 긴장감이 이전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사·영토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에서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특히 경제 회복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다면 국내 여론을 등에 업고 이런 민감한 문제들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회담을 했는데.
△이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극우 불안감’이 있었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일정 부분 우려가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형식적인 상견례 성격이어서 심도 있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제한적으로나마 협력 관계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하지만 회담 직전 일본이 한국 공군기의 독도 상공 통과를 이유로 급유 요청을 거부하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한국의 군악대가 일본 내 행사에 불참하기로 한 점 등을 볼 때 본격적이고 깊은 측면에서 양국의 관계 회복을 말하기는 힘들다.
-우리 정부는 앞으로 한일 관계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한일 관계에 있어서 철저하게 국익을 위한 ‘실용 외교’를 지켜나가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이 요구하니까 움직인다’는 외교는 한국의 국익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최근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국회에서 “중국이 대만에 군사력을 행사한다면 그때가 일본의 존립 위기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일본의 군사력 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대만 유사시’라고 해도 이시바 시게루 내각 때는 일본 방어만을 강조했지만 다카이치는 집단 안보 체제를 발동해 중국과 교전까지 생각하고 있는 뉘앙스로 언급한 것이다.
-역시 국내에서는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 내각 등장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다카이치 내각의 출범은 한마디로 ‘아베의 귀환’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새로운 내각 인사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아베 전 총리의 핵심 참모였던 이마이 다카야를 내각관방 참여(장관급)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설계한 이치카와 다카시를 국가안전보장실장으로 기용했다. 두 사람 모두 아베 시대 때 외교와 경제 정책을 실무에서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번 정권은 인사부터 정책까지 아베 체제를 그대로 복원한 것으로 이해된다.
-외교 노선 역시 아베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나.
△그렇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가 주창했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전략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때 미국이 이를 적극 수용하면서 국제질서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다소 약화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다카이치는 이 전략을 일본 주도의 형태로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다. 아베가 추진했던 ‘푸틴 외교’를 부활시키려는 것이다. 외교의 키워드는 ‘아베 외교의 완전한 계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기반이 약하다는 평가도 나오는데.
△다카이치는 집권 자민당 내에서 뚜렷한 계파를 형성하지 못한 상황이다. 연정을 꾸리고 있는 일본유신회가 언제든 이탈할 수 있는 불안한 구조이고 내부적으로는 아소 다로 등 자민당 내 중진들의 견제도 받고 있다. 따라서 그는 ‘아베의 후계자’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을 ‘아베의 계승자’로 소개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트럼프는 다카이치를 ‘강하고 똑똑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이는 그만큼 미국 내에서도 아베의 후광을 입은 다카이치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시바 전 총리와 비교했을 때 리더십은 어떻게 다른가.
△이시바는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이론형 리더’로 분류된다. 반면 다카이치는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형 정치가’에 가깝다. 연설 때마다 ‘강한 일본을 되찾겠다’고 외치며 보수층의 열광을 이끌어낸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구호와 닮아 있어 ‘일본판 트럼프’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정책, 이른바 ‘사나에노믹스’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이 핵심이다. 감세와 재정지출을 동시에 진행해 경기 회복을 꾀하겠다는 구상인데, 이는 재정 건전성 악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현재 일본의 국민 부담률은 47% 수준인데, 다카이치는 이를 낮추겠다고 공언했지만 명확한 재원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결국 국민들에게 세금 감면이라는 달콤한 약속을 내세워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다카이치의 취임 초 지지율이 80%를 넘는 반면 자민당은 매우 낮은 이유는.
△그는 퍼포먼스를 잘한다.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보여준 ‘스타 정치인’ 이미지는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총리 월급을 줄이고 감세를 실시하겠다고 말하는 등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약도 국민에게는 호감으로 작용한다. 전형적인 포퓰리스트 정치 방식이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자민당 의원들에 대한 불신이 크다.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한 LGBT 이해증진법 통과 등으로 자민당이 ‘진보화됐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보수층이 상당수 이탈했다. 이 표심이 참정당 등 대안 극우 정당으로 옮겨가고 있다.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과 당 지지율이 분리되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다카이치 내각이 높은 지지율을 앞세워 보수 정책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나.
△결국 정책은 국회가 결정한다. 집권 자민당이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았지만 입헌민주당·공명당 등 다른 세력의 견제도 만만찮다. 다카이치의 정치적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내각 지지율로 돌파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지만 지지율이 하락하면 단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연정 파트너인 유신회 대표의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정치적 불안 요인이 커지는 상황도 변수로 꼽힌다.
-향후 일본 정치의 흐름은 어떻게 전망하나.
△일본은 앞으로 ‘강한 리더십’과 ‘보수 포퓰리즘’이 공존하는 시대를 맞을 것으로 본다. 다카이치는 이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다만 정치 기반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단기적 인기는 유지하더라도 장기적 국정 안정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결국 다카이치 정권은 일본이 다시 보수 민족주의로 회귀하는 신호탄으로 이해된다.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정권이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어떤 식으로든 사실상 용인한다면 일본 내에서도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여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평화헌법 9조(전쟁하지 않는다, 군대를 갖지 않는다)’를 수정해야 한다. 아베 정권 시절 추진됐다가 중단된 평화헌법 개정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헌법 개정 찬성 여론이 확산된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다카이치 정권이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추진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실제로 아베 정권 이후 중단됐던 평화헌법 개정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가 최근에 다시 시작될 움직임이 있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추진에 대한 일본 반응은 어떤가.
△일본 내에서도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비핵 3원칙(만들지 않는다, 가지지 않는다, 반입하지 않는다)’에 저촉될 수 있다. 일본은 이를 피해갈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핵잠수함 건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비핵 3원칙, 평화헌법 등과 깊숙이 연관된 문제이기에 간단한 사안은 아니다.
◇ He is…
195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한국 체류 15년 만에 한국으로 국적으로 옮겨 현재 한국인 신분이다.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대우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경상북도 독도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독도 및 한일 관계 등과 관련된 책 16권을 펴냈고 ‘독도 지킴이’ 공로로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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