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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을 해킹한다

THE MEMORY HACKER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테드 버거 박사(56)는 지난 10년 동안 사람의 생각을 재생할 수 있는 ‘브레인 임플란트 칩’을 뇌에 이식하는 연구를 해왔다.

인간은 뇌의 해마(hippocampus) 부위에 손상을 입으면 심각한 기억력 저하(상실)가 초래되는데, 그는 이 칩이 손상된 세포를 대체함으로서 알츠하이머에서 건망증에 이르는 모든 뇌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를 통해 휴대폰의 일시적 통신장애 수준으로 인간의 기억상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일부 윤리학자들은 인간의 뇌 세포에 인위적 조작을 가할 경우 건강한 세포까지 망가뜨리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생체공학·신경생물학과 연구실. 거대한 현미경 근처에 케이블 선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유리 약병, 액체가 가득 담긴 플라스틱 접시, 컴퓨터 자판, 전자 칩들이 가득 차 있다. 세계 정상급 연구실이라기보다는 마치 컴퓨터 수리점 같은 모습이다.

이곳에서 신경공학센터의 설계 엔지니어인 비제이 스리니바잔 박사가 흉측하게 생긴 기다란 바늘을 들고 손톱 반 만하게 자른 실험용 쥐의 뇌 절편 조직을 찌르고 있다.

그의 옆에는 상자처럼 생긴 오실로코프에 연결된 작은 실리콘 칩과 바늘 사이에 가는 전선이 이어져 있는데, 스위치를 누르자 미약한 파동이 모니터 화면을 통해 나타났다.

이는 바늘을 통해 칩이 뇌에 전기자극을 보내는 과정으로 화면에 나타난 파동은 뇌가 받은 전기자극이다. 모래알만한 1평방 밀리미터(mm²) 크기의 웨이퍼 칩이 마치 인간의 신체처럼 살아있는 뇌 세포와 대화를 나눈 것.

스리니바잔 박사는 “모니터에 보여진 파동의 변화는 뇌 절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증거”라며 “칩에서 보낸 자극의 빈도와 반응의 패턴이 거의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상사이자 이 시스템의 창안자인 테드 버거 박사는 이 짧은 실험이 미래의 두뇌과학을 심도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살아있는 세포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칩이야 말로 뇌 언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식장치, 다시 말해 뇌 손상 환자의 기억세포를 복구하거나 새로운 기억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치들의 개발에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버거 박사의 원대한 이상이 제대로만 실현된다면 알츠하이머병의 치료가 컴퓨터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만큼 간단하고 손쉬운 일이 될 수 있다.

고통스런 약물 처방도 필요 없고, 부작용의 걱정도 전혀 없다. 의사를 통해 몇 개의 뇌 세포 칩을 이식받는 것으로 모든 치료가 완료된다.

그렇다면 정말로 실리콘 칩들이 인간의 뇌 세포를 대신할 수 있을까.
버거 박사는 “MP3플레이어를 고치는 수선공이 반드시 음악에 조예가 깊을 필요가 없듯이 전자적 신호처리 문제를 해결하는데 대단한 뇌 이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쥐의 뇌 절편과 웨이퍼 칩 사이에 오고간 대화의 의미는 아무도 모르지만 청력을 높여주는 보청기처럼 칩이 손상된 신경을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중요하다”며 “우리가 뇌의 능력을 단 10%만 흉내 낼 수 있어도 이는 분명 엄청난 성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억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해마 세포의 하드웨어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기억이식장치’(memory implant) 프로토타입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연구자의 입에서 나온 설명 치고는 다소 실망스런 수준이다.

실제 버거 박사의 연구팀은 드림팀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신경학, 수학, 컴퓨터 공학, 생명공학 등의 전 세계 정상급 연구자들로 구성됐지만 지금까지 아주 잠깐 동안 두뇌활동을 재생하는데 성공했을 뿐이다.

또한 그들의 칩은 단지 1만2,000개 이하의 신경세포를 모델로 삼고 있다. 이는 인간의 두뇌 속에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수다.

하지만 대다수의 신경공학자들은 이 정도의 성과도 눈부신 업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트머스 칼리지의 뇌 과학 교수인 리처드 그레인저 박사는 “이 분야는 세상을 뒤바꿀 수 있는 과학”이라고 전제하고, “기억복제는 우리 생애 내에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뇌 조직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작동원리를 파악, 인간 의식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의 변신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를 가진 버거 박사는 56세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노란 원색의 재규어 오픈 스포츠카를 모는 스피드 광이며,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기고, 유명 디자이너의 셔츠를 즐겨 입는 화려한 스타일의 소유자다.

매일같이 실험용 쥐의 뇌만 들여다보는 연구자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인터넷 기업으로 큰 돈을 번 백만장자에 가깝다. 학자다운 고리타분한 말투를 제외하면 말이다.

버거 박사는 “솔직히 말해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사람들은 ‘정말 멋진 아이디어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당신들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식의 반응이 일반적”이라며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자신의 연구 인생 대부분을 과학계에서조차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비주류 분야에 투자했다. 기억재생 및 기억복제 장치 연구에 뛰어든 이후에도 초기에는 같이 작업할 연구원조차 구하기 어려웠을 만큼 학계에서 괴짜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눈에 띄는 연구 성과가 속속 도출되고, 그 의학적 잠재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버거 박사는 어느 순간 학계의 선두주자이자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주류로 이동하고 있음을 실감할 정도다.

당초 하버드 대학의 생리 심리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1970년대 들어 저명 과학 잡지인 사이언스지에 눈 깜빡임에 대한 논문을 게재, 수많은 신경과학자들 사이에서 전도유망한 젊은 피로 대접받았다.

이후 1976년, 26세의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총 10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뉴욕 과학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상도 받았다.



anatomy of a memory

해마(hippocampus)는 두뇌의 중앙처리장치라고 할 수 있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감각을 분석해 그 데이터를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두뇌에 저장한다.







그러나 학계에서 자신의 위치가 올라갈수록 자신과 동료들이 진실로 믿어왔던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두뇌와 관련한 모든 문제는 약이나 수술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버거 박사는 80년대 들어 조금은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뇌를 생물학적 작용을 하는 이해 불능의 늪으로 간주했었던 대부분의 신경학자들과 달리 그는 다양한 자극에 따른 신경세포의 반응을 토대로 인간의 고도 인지기능을 일련의 수학방정식으로 변경하는 작업에 착수 한 것.

마치 보청기나 인공 의족처럼 사고의 메커니즘을 코드화·계량화 할 수 있는 그런 방정식 말이다.

버거 박사가 아주 일상적인 대화에서 조차 “뇌 세포들은 지름 20마이크론의 구멍난 식염수 자루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만큼 뇌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직업적 야심을 뛰어 넘어 버거 박사가 이 같은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자신의 비전이 의학이나 뇌 치료 분야에서 가져올 막대한 잠재력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억세포 재생기계 개발에 성공한다면 뇌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수백, 수천만 명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나아가 그들의 가족까지 구원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1999년의 경험은 버거 박사가 어려움을 딛고 지금까지 연구에 매진하게 된 커다란 자극제가 됐다. 학회 참가를 위해 전 세계를 순회하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비보를 접한 것.

당시 그의 어머니는 말은 할 수 없었음에도 웃거나 노래를 부를 수는 있는 등 해마가 손상될 때 발견되는 특이한 신경 증상들을 보였으며, 결국 2005년 그의 곁을 떠나갔다.

“버거 박사는 향후 4년내에 인간과 가장 유사한 원숭이의 뇌에도 칩을 이식할 계획이다. 그는 전자칩이 인간의 손상된 기억세포를 대체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버거 박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갑자기 내가 하는 연구가 멋진 실험 과제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며 “두뇌 칩을 신경과학계의 거대한 미스터리 중 하나로만 여겼었다가 이제는 뇌졸중, 간질, 치매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로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신경보철학 평가심사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여기서 ‘뇌·컴퓨터 접속장치’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USC대학 최고의 생체공학자 바질리스 마마렐리스 박사, 웨이크 포레스트대학의 저명한 약물학자인 샘 데드윌러 박사 등 미국 최고의 석학 65명을 선발하여 팀을 꾸렸다.

마마렐리스 박사는 이미 기억세포 재생 전자 칩의 모델링 이론을 개발, 연구의 토대를 제공해줬다. 데드윌러 박사의 경우는 올해 중 살아있는 쥐의 뇌에 칩을 이식하는 실험을 단행할 계획이다.

미국 알츠하이머가족협회와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에 따르면 현재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는 미국인은 약 450만명. 이들의 연간 의료비는 무려 1,000억 달러(100조원)에 이른다.

버거 박사는 “기억상실, 간질, 파킨슨병을 비롯해 해마가 손상돼 신경 기능 이상이 초래될 수 있는 외상성 뇌손상 환자가 미국에만 530만명에 달한다”며 “이 수치는 앞으로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억의 모방

USC대학의 메모리 칩은 기억을 처리하는 해마의 손상된 조직에 전해지는 청각, 미각, 시각 등 감각 정보들의 전달경로를 수정하기 위해 고안됐다.

건강한 두뇌는 전기 신호 [파란 선]가 해마 조직 [1] 으로 들어가 CA3 [2], CA1 [3] 으로 알려진 부위를 지나 해마를 빠져 나가면서 뇌의 어딘가에 기억으로 저장된다.

만약 해마의 일부분이 손상됐을 경우 실제 세포를 모방한 전자 칩이 전기신호를 가로채 디지털로 처리 [4] 한 다음 그것을 아날로그 신호로 재(再) 전환하여 건강한 해마 조직에 주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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