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그래픽뉴스]"담배연기 때문에 죽겠어요"…누구를 위한 흡연부스?

금연구역 24만곳, 흡연구역 고작 38곳…

정부가 인상한 담뱃값의 74%는 세금, 흡연권을 위한 예산 편성 "0"

흡연시설 질적 개선·양적 확충 필요…







“정당하게 내 돈 주고 산 담배인데 눈치보며 구석에 숨어서 피게 돼요.”

올 겨울 ‘최강 한파’로 수은주가 뚝 떨어진 지난 16일 광화문 교보문고 일대 오전 11시 50분. 점심시간이 되자, 약속이나 한 듯 여러 빌딩 속에서 우르르 직장인 부대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가까운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쌀쌀한 날씨 탓에 금세 휑해진 길거리를 좀 걸어가다보니,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 틈새마다 작은 연기들이 피어나는 게 보였다. 햇빛 한 줌 들지 않아 검게 그늘진 좁은 골목 사이에서 연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담배 한개피를 태우는 직장인 최모씨(48). 기자가 다가가자 흠칫 경계의 눈빛을 보내더니 “요즘 단속원들이 불쑥 어디선가 나타나서 ‘흡연구역선’ 한발자국만 지나면 바로 단속하더라고요. 종로 일대엔 금연 거리로 지정된 곳이 많아서 더 골목으로 숨어서 피게 돼죠”라며 이내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시 종로구 조례에 따라 금연거리로 설정된 광화문 일대 도보


그는 “국가에서 담배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면서도 정작 흡연자들이 마음 편히 담배 필 공간은 마련해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최씨의 말처럼 흡연자가 당당하게 흡연할 공간이 부족할까? 비흡연자인 기자들이 직접 서울시 흡연구역을 찾아 길을 나서봤다.

서울시의 ‘거리 흡연시설 설치 현황’에 따르면 현재 서울의 10개 자치구에서 총 38개의 흡연시설이 운영 중이다. 38개의 흡연시설은 시설 형태에 따라 개방형(24개)·부분폐쇄형(3개)·폐쇄형(11개)으로 구분된다.

서울 시내에 설치된 개방형(왼쪽)·부분폐쇄형(가운데)·폐쇄형(오른쪽) 흡연부스


금연구역 24만곳-흡연구역 고작 38곳… 흡연자도 혐연자도 꺼리는 흡연부스 가봤더니

우선 중구 장교빌딩 앞에 설치된 개방형 흡연시설에 찾아가봤다. 늘어선 여러 건물들 사이를 지나 한참을 헤매다가 찾은 첫 번째 흡연부스. 마치 마을버스 정류장과 흡사하게 생긴 이 흡연부스는 사방이 뚫려 있어 흡연시설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Smoking’이라고 표시된 이 곳은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차도 바로 옆 길가에 위치해 있었고, 갖춰진 시설이라곤 군데군데 놓인 재떨이통 밖에 없었다. 심지어 말 그대로 ‘개방형’시설이라 흡연자들이 내뿜는 연기는 고스란히 길을 걸어가는 보행자에게로 향했다.

종종걸음으로 부스 앞을 지나던 대학생 정모씨(22)는 “여기(흡연부스) 지나칠 때마다 담배 연기를 항상 맡게 된다”며 “다 뚫려있는데 저게 무슨 흡연시설인지 모르겠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흡연자들도 시설에 만족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씨(34)는 “(시설이) 전혀 막혀있지가 않아 담배 연기가 퍼져나가는 건 안다”면서도 “다른 곳에서 피면 벌금을 물리니까 회사에서 한참 걸어와 여기서 흡연하는데, 여기서도 눈치보이고 괜히 죄인된 기분이 든다”고 불평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다른 흡연 부스는 어떨까? 이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명동 근처 을지로입구역 8번출구에 설치된 부분폐쇄형 흡연시설에 가봤다. ‘개방형’부스와는 달리 ‘부분폐쇄형 부스’의 경우 반 정도 부스가 막혀있었다. 하지만 상단과 옆부분이 뚫려있어 담배 연기가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건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이용자들의 수에 비해 협소한 크기였다. 특히 캐리어를 끌고 들어온 관광객들의 이용이 많다 보니 붐비는 사람들로 인해 얼굴만 부스 안에 살짝 넣고 몸은 바깥에서 빠르게 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부스 주위로 떨어진 담배꽁초들을 청소하던 모 호텔 소속인 청소 직원 박모씨는 “호텔 앞에 위치한 흡연부스이다 보니 담배꽁초를 안치울 수가 없다. 잠시만 자리를 비우면 금세 담배꽁초들이 쌓인다”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폐쇄형은 사정이 어떨까? 이번엔 조금 멀리 떨어져있는 건대입구역 2번 출구에 위치한 ‘폐쇄형 흡연부스’를 찾았다.

오후 6시, 기자들이 찾아간 건대입구역 2번 출구 모 카페 앞 흡연부스. 이 곳은 흔히 ‘건대 약속 장소 1번지’라 불리는 곳이라 그런지 흡연 부스를 찾기가 쉬웠다.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완전 밀폐된 흡연부스는 사람이 몰리자 히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가끔씩 움직이는 다리들만 보이는 일명 ‘너구리굴’ 속으로 용기를 내 들어가봤다. 문열림 버튼을 누르자 유리문이 서서히 열렸고 하얀 연기구름떼가 순식간에 온몸을 덮었다.

조용히 벽에 기댄채 담배를 피던 대학생 김은영(23)씨는 “흡연자들도 이 곳은 잘 안 온다. 담배피는 3~4분정도 잠깐 들어오긴 하지만 온 몸에 담배냄새가 배어서 흡연자들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스 밖에 친구를 잠시 세워두고 서둘러 담배를 꺼내 부스로 들어온 신승호(24)씨는 “흡연부스 내부가 너무 답답하고 열악하니까 혼자 얼른 피고 나간다”며 “제대로 시설이 갖춰진 흡연부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날 흡연부스를 이용한 흡연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흡연시설의 확충과 흡연권 보장’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서울시에 설치된 흡연시설은 38개에 불과해 상당 수가 흡연시설을 찾지 못해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 피는 실정이다.

담뱃값 74%가 세금…정작 흡연권 위한 예산은 ‘0’



지난 2015년 1월, 정부는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흡연율을 줄이고 국민건강을 증진한다는 명분하에 담뱃값 인상에 포함된 건강증진부담금은 354원에서 841원으로 2배 넘게 올랐다. 흡연자들을 위한 시설 확충 등으로 쓰겠다는 담배소비세 역시 641원에서 1,007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렇다면 이 담뱃세는 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걸까.



우리나라는 흡연자의 금연을 유도하고 흡연을 방지하기 위해 담배에 담배소비세, 교육세, 건강증진기금,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을 부과해 왔다. 담뱃값의 74%가 세금이다. 담뱃값이 2,500원일 때 62%가 세금으로 부과된 것과 비교하면 12%p 증가한 수치다. 담뱃값 인상으로 인해 정부가 작년 한 해 걷은 담배세수는 12조 2,000억 원에 달했다.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난 기금의 65%가 건강보험 지원에, 10%가 보건산업 육성에 투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흡연자의 세금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으면서도 흡연권을 보장하기 위한 예산은 편성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5년 복지부가 짠 ‘2015 건강증진기금’의 사업구성을 살펴보면 순수하게 국가 금연지원서비스 사업에 쓰이는 예산은 1,475억원에 그친다. 그 중 흡연자 건강보호, 흡연장소 환경 개선에 대한 예산과 저소득층 흡연 관련 질환에 대한 의료비 지원에는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다. 실제 세금을 내는 이들에게는 전혀 혜택이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흡연자들을 위한 (시설 확충 등) 예산이 편성되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예산은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담배 한 값당 약 26%를 차지(1,182원)하는 금액을 가져가는 국내 최대 담배 판매 기업 KT&G는 어떨까?

KT&G 담당 관계자는 “KT&G는 흡연부스를 필요로 하는 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내부 검토를 거쳐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먼저 (KT&G가) 지원을 제안하는 건 아니다”라며 “2016년 한 해 동안 전국적으로 36건의 지원이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흡연자의 흡연권을 위한 선제적 투자는 지방자치단체가 편성하는 예산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우선시되는 건 아니다. 서울시 흡연시설은 시 예산으로 설치되며 이후 관리는 자치구가 도맡는다. 서울시는 2017년 흡연부스 관련 예산으로 총 5억 5,000만원을 확보했다. 서울시청 건강정책국 관계자는 “작년보다 더 많은 예산을 확보했는데 아직 흡연부스와 관련해 구체적인 예산 활용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면서도 “자치구별로 여건과 상황이 달라 부지확보 등이 생각보다 제한되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까지는 금연사업 등이 우선이라 흡연부스 관련 정책은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작년 12월 국회 공청회에서 “담뱃세에 포함된 건강증진부담금을 폐지하고 별도의 세금을 걷어 일반예산에 귀속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건강증진부담금이 정작 흡연자를 위해 사용되지 않고 다른 목적에 쓰였다는 이유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충분한 사전 검토와 분석이 부족했으며 ‘2,000원 인상’이라는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상된 담뱃값으로 확보한 재정을 흡연자 건강보호와 흡연환경 개선, 금연·건강증진사업 및 국가 암 관리사업, 취약계층과 취약지역을 위한 서비스 제공 및 지원, 건강증진 및 질병관리를 위한 보건의료 인프라 확충 등에 쓰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흡연자 죄인 취급은 이제 그만…흡연권과 혐연권 모두 보장돼야

한편, 우리나라에 비해 흡연이 비교적 자유로운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은 지난 2002년 길을 걷던 아이가 보행흡연자의 담뱃불에 눈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뒤 지자체 주도로 길거리 흡연을 금지하는 관련 조례가 만들어졌고 대신 공공장소를 중심으로 흡연부스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흡연공간은 단순히 거리를 두어야 하는 혐오의 대상이 아닌 습관의 차이로 인식되도록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와 일본담배주식회사(JT)는 흡연공간 마련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면 JT가 흡연부스를 설치하고 부스 내부에 광고와 담배 자판기를 설치함으로 수익을 유지하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흡연정책을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 설치된 개방형 흡연부스(좌), 도쿄역 승강장에 설치된 폐쇄형 흡연부스(우)


서울시만해도 흡연구역이 38곳이 있지만, 대부분 개방된 형태의 ‘오픈형’이 대부분이어서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여전하다. 원치 않는 담배연기와 냄새에 노출되고 때론 신체적 상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산부 장모씨(32)는 “거리를 걷다보면 피할 새도 없이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게 된다”며 “배 속의 아이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길거리 흡연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동시에 흡연자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비흡연자 이세휘(25)씨는 “흡연권과 혐연권이 모두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흡연권을 충분히 보장하면 간접흡연 사례도 어느 정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금연구역과 흡연구역, 그리고 흡연자들과 혐연자들의 풀리지 않는 갈등에 대한 해답은 뭘까.

전문가들은 흡연자를 구석으로 몰고 있는 현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인택 한국담배소비자협회 상임이사는 “흡연자가 납부하는 세금이 엄청나다. 금연구역이나 정책을 확대하는 것은 좋지만, 흡연자의 권리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흡연자들은 간접흡연 피해를 고려해 배려심을 키워야 하고, 비흡연자들은 담배 피우는 사람을 범죄자처럼 여기고 낙인찍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흡연 문제는 상호 간의 배려와 관용 없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밝혔다.

흡연시설을 흡연자가 찾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은령 한양대 응용미술교육과 교수는 “흡연부스가 혐오시설처럼 인식돼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며 “흡연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면서 간접흡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공공디자인 요소가 적용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글·그래픽·영상 정가람기자 유창욱 인턴기자 garam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