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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검사의 이력서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조종태 광주고검 차장검사





우리나라 언론은 검사들을 거론할 때 으레 그 검사가 무슨 사건을 처리했는지를 덧붙이곤 한다. 그 사건은 대개 일반인들이 알 만한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 흔히들 ‘특수사건’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그런 특수부 검사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국민들이 TV나 영화를 통해 일반적으로 보는 검찰은 대기업이나 정치인과 관련해 여기저기 압수수색을 하고 사람을 잡아와 조사하고 구속하는 행위를 하는 곳과 사람들일지 모른다. 언론과 대중의 지대한 관심으로 인해 마치 특수부가 검찰의 전부인 것처럼 표현되지만, 실상 전국에 특수부는 몇 개 되지 않고 그 업무를 담당하는 검사들도 상대적으로 훨씬 적다.

나는 20년이 넘는 검사 경력 동안 단 한 차례도 특수부에서 근무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다른 검사들이 특수수사를 하는 동안 나는 형사부와 공안부·공판부·기획부서 등에서 일했다. 나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어떤 사건을 처리했는지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떤 보직을 거쳐왔는지 기재된 것이 전부다.

검찰청에는 나처럼 특수부 근무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검사들도 상당히 많다. 형사부를 비롯한 공판부·조사부·강력부 등도 국가와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부서다. 여기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동료들과 힘을 합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건을 처리하고 일한다.

나는 몇 년 전 검찰 생활 중 드물게 그간 검사로서의 실적을 정리하는 공적조서를 작성할 일이 있었다. 그때도, 이후 승진을 위한 자료를 제출할 때도 수사 실적을 기재하도록 주어진 많은 칸을 채울 것이 없어서 고민했다. ‘나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난 그동안 뭘 했던 거지. 이 칸들을 채울 게 없네.’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 처리했던 사건들과 기획부서에 근무하면서 했던 제도 개선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을 찾아 겨우 남아 있는 칸들을 채웠다.

특수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들은 수사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자연스레 언론과 국민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 이력은 상당 기간 계속 그 검사를 따라다닌다. 그들은 세상에 알려진 사건 수사로 검사 이력의 빈칸을 채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건을 밤낮없이 씨름하면서, 전혀 화려하지 않게, 부모 노릇할 시간도 없이 묵묵히 맡아서 처리하는 형사부 등의 검사들은 무엇으로 빈칸을 채워야 할까.

“부장님은 친정엄마 같아요.” 같이 근무했던 실무관에게 들었던 말이다. 남자인 나로서는 다소 낯설고 어색한 고백이었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 여자들에게 친정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가족에게조차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해준 검사, 직원 한명 한명을 가장 인간적으로 사랑했던 사람, 따뜻한 사람 향기를 지닌 검사. 직원들과 사건 당사자들이 기억하고 고마워하는 검찰청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다.

검사로서 해야 할 일과 도리를 다한 다음, 좁게는 함께 일하는 검찰 가족들로부터, 넓게는 사건 당사자와 국민들로부터 받는 진심 어린 한 줄의 고마움과 감사함의 표현. 그것이 검사의 이력서를 채워야 할 진정한 자산이 아닐까. 특별수사 스펙이 있든 없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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