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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 '마지막 개인주택' 고석공간 새 주인 찾는다

1983년 지은 명륜동 '박고석 집'

누이에 대한 각별한 사랑 담겨

'매형' 박고석 화백이 여생 보낸곳

건축사적·미술사적 가치 높아

건축가 김수근이 1983년에 매형인 박고석 화백과 의상디자이너였던 누나 김순자 여사를 위해 지은 종로구 명륜동의 ‘고석공간’ /사진제공=박기호






건축계의 거장 김수근이 짓고, 근대화단의 거물이던 화가 박고석이 여생을 보내며 작업한 종로구 명륜동의 3층 주택 ‘고석공간’이 유족의 손을 떠나게 됐다.

2일 박고석(1917~2002)의 유족 등에 따르면 김수근(1931~1986)이 지난 1983년 누나 김순자(92) 씨와 매형인 박 화백을 위해 지은 집이자, 개인주택으로는 마지막 유작이 된 ‘고석공간’이 새 주인을 찾는다. 대지면적 65평에 정원과 다락방이 딸린 3층 주택으로 연면적은 100평 이상이다. 박 화백의 타계 후 홀로 집을 지키던 김 여사가 노쇠한 탓에 더 이상 건물 유지가 힘들다고 판단, 집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근이 지은 ‘고석공간’ 내부. 거실 맞은편에는 실내지만 작은 마루와 함께 방을 만들어 독립공간이 조성돼 있다. /사진제공=박기호


르 코르뷔지에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작은 집이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등 거장의 진정성은 대형 공공건축이 아닌 주택에서 종종 드러나곤 한다. ‘고석공간’의 경우 김수근이 박물관·교회를 비롯해 각종 청사와 호텔·경기장 등을 집중적으로 설계하던 전성기에 지은 마지막 개인 주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건축물이다. 게다가 화가 박고석의 집이자 아틀리에로 사용돼 예술사적 가치는 더욱 크다. 평양 태생의 박 화백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을 그린 ‘범일동 풍경’을 비롯해 한국의 산(山) 연작 등 풍경화로 유명하다. 고향 친구 이중섭이 생전에 박고석의 집에서 1년가량 더부살이를 했고, 타계 후 1년이나 이중섭의 유골함을 집에 보관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실제로 ‘고석공간’의 2층 방에는 이중섭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박고석 1951년작 ‘범일동 풍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각별한 오누이에 대한 사랑을 담은 집= 이 집을 의뢰한 누나 김순자 여사와 동생 김수근은 각별한 남매였다. 가난한 화가와의 결혼을 반대해 하객도 없이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김 여사의 결혼사진을 찍어준 이가 김수근이었다. 서울대 건축과 2학년이던 해 한국전쟁에 징집된 김수근이 휴가를 받아 부산 신혼집에 오자, 누이는 반지를 팔아 동생을 일본으로 밀항시켰다. 이후 도쿄예대와 도쿄대 건축학과에서 공부한 김수근은 1959년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공모에 1등으로 당선돼 ‘천재 건축가’로 불리며 금의환향했다. 궁중의상 전문가 겸 1세대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누이가 처음 집을 부탁했을 때 김수근은 “내가 지은 집에 살면 불편할 것”이라고 거절했지만 김 여사가 “불편을 멋으로 여길 테니 마음대로 지어보라”고 재차 청했다고 한다. 건축주의 의견이 크게 개입되는 여타 주택과 달리 이 ‘고석공간’만은 김수근의 철학이 고스란히 투영됐다.

김수근을 대표하는 벽돌이 주재료로 쓰였다. 검붉은 벽돌집을 10년 말린 미송 목재로 한 번 더 둘러 답답하지 않으면서도 내부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게 했다. 생전 김수근은 “다른 집 30채 지을 목재를 썼다”고 자랑했다고 전한다. 나무를 짜 맞춘 격자무늬 현관문이 벽돌 문양과 대구를 이뤄 입구에서부터 무한한 공간감을 느끼게 한 것, 집을 관통하는 나선형 계단도 특징이다. 지하층은 박고석의 아뜰리에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사진작가인 3남 박기호 씨의 스튜디오로 사용됐다. 박기호 씨는 “고민 끝에 내놓지만 아쉬움이 크다”면서 “재단이든 개인이든 뜻있는 새 주인을 만나 문화적으로 활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근이 짓고 박고석이 살았던 ‘고석공간’ 내부


김수근이 짓고 박고석이 살았던 ‘고석공간’의 현관 출입구. /사진제공=박기호




◇의미 있는 건축물, 어떻게 됐나= 김수근의 유작이자 대학로의 상징 같던 출판사 샘터 사옥은 매물로 나왔다가 지난 2017년 ‘선한 투자를 목표로 하는’ 부동산투자회사 공공그라운드가 매입했다. 옛 서울대 문리대 터에 김수근 특유의 빨간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 ‘공공일호’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수익성보다는 건물과 역사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척에 있는 아르코예술극장 또한 김수근의 유작이다. 그의 작품 중 백미로 꼽히는 종로구 원서동의 ‘서울 구 공간사옥’은 지난 2014년 등록문화재 제586호로 지정됐다. 검은색 벽돌 벽체가 에워싼 건물로 공간들이 막힘없이 서로 연결되는 등 한국 전통 건축의 본질적 특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국 현대건축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이 건물은 2014년 미술관인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문을 열었다.

주요 예술가의 의미 있는 집이 미술관이나 기념관이 되는 ‘하우스 뮤지엄’은 유럽에서 활발하며 국내에서도 확산 추세다. 한국화가 박노수 화백이 살던 ‘옥인동 박노수 가옥’은 1991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됐고 지금은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이 됐다. 백남준이 어린 시절 살았던 종로구 창신동의 옛 집터는 서울시가 음식점으로 쓰였던 단층 한옥을 2015년에 매입해 리모델링한 후 2017년 3월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기념관으로 개관했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동상으로 유명한 조각가 김세중과 시인 김남조 부부가 1955년부터 살아온 용산구 효창동의 자택 겸 작업실은 김세중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성북구는 원로 조각가 최만린이 30년간 작업실 겸 집으로 썼던 정릉동의 2층 집을 매입해 내년 4월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으로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조각가 권진규의 성북구 동선동 작업실은 내셔널트러스트가 아카이브 미술관인 ‘권진규 아틀리에’로 대중에 개방하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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