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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디지털교도소' 막는다고 될까

조교환 디지털편집부 차장

조교환 디지털편집부 차장




중세에는 범죄자들을 육체적 고통으로 다스렸다.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고문하고 사지를 절단하는 참혹한 처형을 통해 대중의 본보기로 삼았다. 형벌을 지시하고 집행하는 사람은 왕족 등 최고 권력자였으며, 그들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권위를 위협하는 사람들까지 마구 처형했다. 급기야 억울하게 죽는 이들이 늘었고 분노한 민심은 마침내 폭동을 일으켰다. 이렇듯 신체에 대한 처벌이 한계에 부딪치자 생겨난 형벌이 바로 감옥살이다. 겉으론 관대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는 덜 처벌하기보다 효과적으로 감시하고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공간의 제약을 허문 디지털 시대에 또 다른 감옥이 생겨났다. ‘디지털교도소’라는 사이트다. 이곳은 국내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로, 운영자는 우리나라의 관대한 법 집행에 한계를 느껴 자신들이 범죄자들에게 사회적 심판을 내리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면은 있다. 사이트에 공개된 90여 명의 범죄자 중 대부분이 성범죄나 살인 등 강력범죄자다.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1년에 한두 번 오는 여성가족부의 성범죄자 알림 우편으로는 안심되지 않는다. 이 사이트에 있는 범죄자의 사진과 신상정보에 자꾸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정의사회를 구현한다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높다. 사법기관이 인권보호란 미명 하에 범죄에 대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이 사이트는 ‘사이다’같은 존재가 됐다. 지난 6일 법원은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디지털교도소는 손씨를 ‘감옥’에 가두고 사진과 출신지역·학교 등의 신상을 공개했다. 사람들이 이 사이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정부와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두텁다는 것 아닐까.

하지만 무분별한 신상털기와 인권침해, 가짜뉴스 등 위법행위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운영자는 사이트를 철저히 암호화했다며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걱정 말고 마음껏 게시글을 쓰라고 한다. 게시물을 보면 정보를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정확한 정보인지 신뢰할만한 근거가 없다. 게다가 운영자는 범죄자를 공개하면서 무고한 친구의 사진까지 모자이크 없이 게시했다.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다.

경찰이 디지털교도소 사이트 운영자 검거를 위해 수사에 나섰지만, 여전히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문제라는 여론이 높다. 정부는 이 같은 사이트가 왜 생겨났고, 왜 열광하는지 곱씹어야 할 것이다. 단언컨대 운영자를 검거해 사이트를 폐쇄한다더라도 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강력사건 범죄자 정보에 대한 알 권리를 확대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디지털교도소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chang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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