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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파괴한 지구온난화

Did Gobal Warming Destroy My Hometown?

2011년 5월 22일. 지구궤도 3만6,000㎞ 상공을 돌고 있던 정지위성이 미국 캔자스주 남동부 상공을 떠가는 대규모 구름 전선을 발견했다. 오후 2시경 이 구름 전선 중 하나가 갑자기 드라이아이스 폭탄처럼 폭발했다. 흰색의 짙은 수증기가 갑자기 생기며 퍼져나갔고, 이를 관찰하던 미 해양대기청(NOAA)은 그 이후 5시간 동안 이른바 '슈퍼셀'로 불리는 이 거대한 뇌우(雷雨)가 필자의 고향인 미주리주 조플린으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무렵, 2대의 토네이도 추적 차량이 조플린의 서쪽 경계선으로 달려갔고 슈퍼셀의 검은색 적란운으로부터 덩굴손 같이 생긴 회오리가 지상으로 뻗어 나오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 회오리는 생성 즉시 사라졌지만 안심할 여지는 없었다. 곧바로 폭이 800m나 되는 거대한 회오리가 튀어나왔고 지면에 닿은 순간 주변의 전봇대와 전깃줄을 휩쓸며 여기저기서 불꽃이 뿜어졌다.

오후 5시 41분 미 기상청의 미주리주 스프링필드 사무소는 다음과 같은 경보를 발령했다. '조플린 서쪽 지역에 토네이도 발생 목격 보고. 전력망 파괴.'

이 토네이도는 조플린 서쪽 지역의 주택 지붕과 나무들을 집어삼키며 더욱 강력해졌다. 조플린의 시외곽에 당도했을 때는 최고등급인 EF-5급 토네이도로 변해있었다. EF-5급이면 3초간의 돌풍 속도가 322㎞ 이상인 토네이도를 뜻하며 자동차를 100m 밖으로 집어던지고, 잘 지어진 주택을 통째로 뽑아버릴 수 있다. EF-4급이 '대규모 파괴자(devastating)'라면 EF-5급은 '믿을 수 없는(incredible)' 수준으로 표현된다. EF-4급 토네이도가 불과 몇 분 만에 모든 문명의 흔적을 날려버릴 진데 그 이상이라면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조플린을 덮친 토네이도는 시속 16㎞ 이하의 속도로 서서히 이동하며 모든 것을 철저히 산산조각 냈다. 특히 상업지구는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이곳의 세인트존스병원은 단 45초 만에 9층 건물 전체가 토대에서 뽑혀 10㎝나 움직였다. 이때 토네이도의 폭은 1.2㎞에 달했고 앞을 가로막는 대여섯 개 블록의 주택들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북쪽으로 나아가 조플린고등학교를 강타했다. 이 학교는 최근 새 단장을 마친 벽돌 건물들로 이뤄져 있었지만 작은 저항 한번 못해보고 폐허가 됐다.

이어 토네이도는 끔찍한 잔해를 남기며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심가에 도착해서는 월마트, 피자헛을 차례로 박살냈고 주민들에게는 쇠와 나무, 유리 파편을 날려댔다. 안전한 곳에서 레이더 스크린을 보고 있던 기상관들은 스크린에 나타난 흰색과 핑크색 덩어리를 발견했다. 토네이도가 도시 전체에 잔해물을 날려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토네이도는 그동안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서 힘을 얻었다는 듯이 조플린 동쪽의 초원지대에 도착하면서 급속히 세력이 약화돼 사라졌다.

슈퍼셀 (Supercell) - 회오리치는 거대한 뇌우(雷雨)를 의미한다. 슈퍼셀이 발생한 곳에는 거의 토네이도가 나타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토네이도의 확실한 전조현상으로 꼽힌다.

필자는 브루클린의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처제의 전화를 받고 토네이도 발생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조플린 태생이라면 누구나 토네이도 경보에 익숙했고 이번에도 거짓 경보라고 여겼다. 그래도 TV를 켜고 날씨 채널을 틀었다. TV 속 기상관은 방금 집을 잃고 멍해 있는 조플린의 시민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몇 채의 주택이나 무너졌을지 궁금하던 차에 카메라 앵글이 세인트존스병원을 향했고 필자는 말문이 막혔다. 창문은 모두 깨졌고 병원 주변건물들도 박살이 난 모습이었다. 카메라 앞의 기상관도 말문이 막힌 듯 고개를 돌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걸 본 필자와 아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병원과 부모님의 집은 불과 800m 거리 밖에 되지 않았던 데다 조플린에는 여전히 조부모와 숙모, 삼촌, 사촌, 친구 등 많은 지인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우리는 전화, 문자메시지, 페이스북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가족과 친구의 안부를 확인했다. 전화는 불통이었지만 다행히 친가와 처가의 부모님은 신속히 문자메시지 답장으로 무사함을 알려왔다.

그날 저녁이 되면서 이 토네이도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실체가 드러났고 다음날까지 피해 집계가 계속 이어졌다.

이번 사고로 조플린은 시 전체 부동산의 20%를 잃었다. 161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도 1,150여명이나 됐다. 불과 4만9,000명이 거주했던 소도시의 손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물론 이는 역대 최악의 토네이도는 아니다.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7위에 해당한다. 1위는 1925년 3월 18일 발생한 토네이도로 미주리주, 일리노이주, 인디애나주 등 3개주에서 3시간 30분 동안 695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하지만 6위까지의 토네이도는 기상관측장비가 개발되기 이전에 발생했다. 때문에 이들이 단일 토네이도였는지 명확치 않다. 그래서 조플린 토네이도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단일 토네이도로 기록됐다.

조플린처럼 토네이도의 길목에 위치한 도시들은 오래전부터 경보시스템과 대피소를 운용하고 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사이렌의 의미와 신속한 대피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게다가 지속적인 도시의 확대도 토네이도에 의한 타격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실제로 100년 전 조플린은 면적이 불과 32.4㎢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90.7㎢나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건축 관련 규정들은 EF-5급 토네이도가 발생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만들어졌다. 조플린 토네이도에 의해 대형 점포 하나를 잃어버린 건축자재 전문기업 홈데포는 "조플린 지점이 적절한 공법에 의해 건축됐지만 이 정도의 토네이도에 직격 당해서 살아남을 건물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조플린 토네이도를 겪은 직후 시민과 기자, 정부 관료들은 기존 경보 체계를 비판했고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람들은 기상예보관들이 시민들에게 충분한 주의를 줬는지, 위성과 레이더 시스템은 당초 설계대로 제대로 작동한 것인지, 그리고 담당자들은 정말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인 것인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필자의 관심은 달랐다. 경보 및 대응시스템보다는 토네이도 자체에 주목했다. 사실 필자는 지난 수년간 고향에서 전해지는 기상 소식에 어이가 없었다. 1월 기온이 20℃가 넘은 적도 있었고, 가뭄과 폭우가 번갈아가며 찾아온 적도 있다. 전기가 들어온 이래 단 한 번도 단전되지 않았던 곳에 눈보라 때문에 단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토록 파괴적인 토네이도는 어떤 '패턴'의 일부가 아닐까. 미쳤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기후의 원인이 기후변화는 아닐까."

토네이도가 지나가면 과학자들은 한동안 언론에 나와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하며 대중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필자는 이들의 말을 들으며 특정 기상현상과 기후변화의 인과관계 파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그 주에 워싱턴포스트의 특집 칼럼에서 빌 맥키븐이 지적한 견해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맥키븐은 지구온난화가 인류가 직면해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해온 저술가다. 제목은 '기후 변화와 조플린 토네이도의 연관성은 절대로 찾을 수 없다'였다. 그보다는 조플린 토네이도와 전 세계에서 일어난 홍수, 산불, 가뭄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게 오히려 더 빠르다고 주장했다.

칼럼을 끝까지 읽었을 때 필자는 그가 이렇게 비아냥거린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분노였다. 실체가 분명한 위험요소인 기후변화가 조플린 토네이도와 같은 대형 자연재해의 원인일 개연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데서 오는 좌절과 분노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필자도 그와 같은 분노가 느껴졌다.

토네이도는 그동안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서 힘을 얻었다는 듯이 초원지대에 도착하면서 세력이 약화되며 사라졌다.

토네이도의 테러 후 일주일 뒤 필자는 부친과 픽업트럭을 타고 폭풍의 이동경로를 추적해 봤다. 출발점은 토네이도 추적 차량이 슈퍼셀을 처음 만난 서쪽 도로에서부터 동쪽을 향해 조금 달리자 쓰러진 전봇대, 꺾인 나무 등 토네이도의 흔적이 나타났다. 파괴의 정도는 계속 심해졌고 새로 조성된 교외지역에서 이르러서는 부서진 건물이 처음 발견됐다. 차고가 반쯤 무너진 주택이었는데 차고 문에는 섬뜩한 경고문구도 붙어 있었다.'약탈자는 사살하겠음!'

세인트존스병원을 굽어보는 언덕 위로 올라가자, 재난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참혹한 모습이 펼쳐졌다. 무너진 주택과 뿌리 뽑힌 나무들이 지평선 끝까지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고 무너진 집터 곳곳에는 꽃다발이 놓인 십자가들이 서 있었다.

다시 트럭에 몸을 싣고 더 동쪽으로 달렸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친구들의 집, 필자가 나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었던 자리를 지나쳤다. 도저히 그곳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형과 건물은 변해있었고 고향으로 오는 항공기 속에서 비참한 광경을 볼 각오를 다졌음에도 가족사진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잔해를 뒤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해 극심한 우울감이 몰려왔다.

워낙 많은 것이 파괴됐기에 피해복구 요원들은 도시를 뒤덮은 잔해를 치운 다음, 모든 교차로 바닥에 페인트로 도로이름을 적는 일부터 해야 했다. 도로표지판은 물론 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랜드마크가 전부 사라져 조플린을 떠나지 않고 평생 동안 살아온 사람조차 길을 찾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중심가는 응급구조대원과 경찰관, 그리고 필자와 같은 호기심 넘치는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시신 수색이 끝난 집터에는 스프레이로 특정 기호가 표시돼 있었고 '철거 준비 완료'라는 메시지가 적힌 주택들도 많았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플린고등학교가 내려다보이는 또 다른 언덕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텅 빈 고등학교 주변을 거닐며 축구장 언저리에 수북이 쌓인 잔해더미를 살펴봤다. 못, 벽돌, 볼트, 목재, 맨홀 뚜껑 등이 뒤엉켜 있었다. 아마도 이것들은 토네이도가 지나갈 때 살인도구가 되어 공중을 날아다녔을 것이다.





대피소 없는 도시
조플린 토네이도는 불과 32분 만에 161명의 인명과 6,954채의 주택을 집어 삼켰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차에 올라서 파괴의 흔적을 쫓아 6.4㎞를 더 달렸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파괴의 흔적이 급작스럽게 사라졌다. 6,954채의 집이 무너지고, 최소 30억 달러의 재산피해가 났지만 마을 동쪽 경계의 나무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 있었다.

그날 저녁 필자는 완전히 변해버린 조플린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1년 후쯤에는 토네이도의 이동경로를 따라 도시 한복판을 가로질러 길고 널찍한 풀밭이 생겨 있을 거라는 게 아버지의 예상이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부동산중개인인 어머니는 재개발이 시작되면 땅주인들이 서로의 부지를 합쳐 21세기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대형 주택들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택들이 완공될 때쯤에는 고가의 집에 입주할 능력이 없는 원래의 주민들 대부분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없을 것이다.

위치 파악이 가능한 랜드마크가 전부 사라져 여기서 평생 동안 살아온 사람조차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기상학자들은 한때 토네이도 예보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경보를 울리면 공포에 빠진 사람들이 약탈범과 방화범, 강도로 돌변해 토네이도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1948년 3월 25일 오클라호마 팅커공군기지의 기상관 어니스트 퍼부시와 로버트 밀러가 처음 토네이도 예보에 성공했다. 기지를 향해 다가오고 있던 스콜(squall) 전선이 토네이도로 발달해 3시간 뒤 기지를 덮칠 것임을 정확히 알아맞힌 것.

두 사람은 흡사 천재로 인정받았고 3년 뒤 팅커 지역에 폭풍예보센터를 차렸다. 이곳에서 이들은 토네이도 예측에 계속 성공하며 적잖이 명성을 날렸다. 1951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는 "빨랫줄에 걸린 이불이 바람에 움직이는 것을 보고 토네이도를 예측해야 했던 농부들이 퍼부시 와 밀러 덕분에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대피소로 피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전역의 폭풍우와 토네이도를 관측 미 기상청 산하 폭풍예보센터(SPC)의 전신이 바로 싱커 폭풍예보센터다. SPC의 경보 통합 기상관 그렉 카빈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토네이도와 관련해 하는 일은 미 국립허리케인센터(NHC)가 허리케인에 대해서 하는 일과 같아요. 전문가들을 두고, 미 전역의 폭풍을 예보하는 국립 기관입니다. NHC와 다른 점은 1년 내내 경계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토네이도는 허리케인과 달리 계절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SPC의 기상관들은 정지궤도 위성 2대와 120여개소의 도플러 레이더 기지 레이더망을 활용, 토네이도 및 폭풍우를 야기할 기상 조건이 발생하지 않는지 24시간 살핀다. 보통은 서쪽에서 온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남쪽에서 온 덥고 습한 공기와 만날 때 그런 기상조건이 만들어진다. 카빈과 그의 동료들은 종종 토네이도가 발생하기 수일 전에 그 사실을 예보하기도 한다.

SPC는 주의보를 발령한 뒤 현지 기상예보사무소로 예보 책임을 넘긴다. 그러면 현지 사무소에서는 토네이도의 존재 증거인 '갈고리 메아리 (hook echo)'를 찾는다. 회전하는 토네이도의 바람에 레이더 전파가 반사되면서 생기는 독특한 반사파를 이렇게 부른다. 이것이 탐지되는 순간, 주의보가 경보로 격상되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 시스템은 효율적이다. 카빈은 2011년 발생했던 다른 토네이도 재난들이 발생하기 수 일전에 며칠 내 대형 토네이도 생성에 적합한 기상조건이 만들어질 것임을 예보했다고 말했다.

"4월 25일부터 3일간 최소 178개의 토네이도가 미국 남동부를 휩쓸며 321명의 인명을 앗아가기 전 저희는 지독한 토네이도의 등장을 눈치 챘죠. 예보가 없었다면 훨씬 극심한 피해를 당했을 거예요."

그런데 토네이도를 생성시킬 기후조건이 언제 조성될지 빨리 알아채더라도 각각의 토네이도가 생기는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예견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 토네이도 예보의 근원적 난제다. 조플린 토네이도가 그랬다.



"당시 조플린은 미국 남부 평야지대에서 흔히 보이는 5월 특유의 악천후 시기였어요. 왜 캔자스 남동부에서 갑자기 슈퍼셀이 만들어졌고 그런 식으로 발전했는지는 누구도 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단 하루만에 생긴 예측불가의 토네이도였어요."



예보관들은 5월 22일 오후 늦게까지도 중부 평야지대를 휩쓸고 다니던 폭풍우가 가할 수 있는 위협은 기껏해야 심한 우박 정도도 내다봤다. 그러다가 SPC의 오클라호마주 노먼 사무소 팀에 의한 데이터 분석이 이뤄진 뒤 오후 5시 17분 스프링필드 사무소가 조플린의 TV 및 라디오방송국을 통해 토네이도 경보를 발령했다. 경보가 나간 시간은 24분으로 이 정도면 시민들에게 위험을 알리기에 충분하다고 보이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6월경 미 기상청의 조사관들이 조플린을 직접 찾아가 현장 조사와 생존자 인터뷰를 하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게 됐다. 현지 기상경보기관과 기상청의 예보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때문에 시민들은 누가 옳은지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졌다.

이보다 더 큰, 아니 가장 큰 문제는 조사관들 사이에서 '사이렌 피로감(siren fatigue)'이라 불리는 증상이었다. 미국 내 다른 많은 도시들처럼 조플린도 풍속이 시속 120㎞ 이상인 폭풍이 접근해 오면 기상청의 공식 주의보나 경보 발령과는 상관없이 시당국 차원에서 3분간 사이렌을 울린다. 5월 22일 상황도 똑같았다. 시의 재해대책관들은 캔자스 남동부에서 토네이도 조짐이 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5시 11분경 사이렌을 울렸다.

그러나 경보를 너무 빨리 울리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주민들이 사이렌 소리를 지겹게 들은 동네라면 더욱 그렇다.

기상청의 조사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조플린의 한 시민의 혼란스럽고 굼뜬 반응이 적혀 있다. [1] 오후 5시 11분(토네이도 도착 예상시각 30~35분전) 사이렌을 청취. [2] TV로 다가가 기상청 발표를 확인하니 토네이도가 조플린에서 북쪽으로 11㎞ 떨어진 곳에 도착할 것이라고 발표. [3] 기상청 발표를 더 믿고는 현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움. [4] 그로부터 27분 후 사이렌을 다시 청취. [5]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집안으로 들어가 다시 TV를 켰지만 TV 속 기상관들은 여전히 토네이도가 조플린을 비껴갈 것이라고 말함. [6] 그 순간 토네이도를 목격한 아내가 달려와 "지하실로 대피해요"라고 소리침.

보고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돼 있었다. '부부가 지하실에 다다른 순간, 토네이도가 덮쳐 주택을 완파시켰다.'

필자가 그 시민이었다면 현관에서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보기는 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필자 또한 지하실로의 피신은 지평선이 어둡게 변하고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댈 때쯤에야 생각했을 확률이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이렌의 리듬과 음 높이를 달리하면 사이렌 피로감을 일부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기상청 스프링필드 사무소의 빌 데이비스 예보국장은 이런 의견에 짜증을 낸다. 그는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경보는 어디까지나 경보입니다. 사람들이 죽을 위험에 처했다고 알리는 데 왜 엄청나게 많은 형용사와 부사가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대중과 경보에 대해 연구한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사회학자 데니스 S. 마일티 박사는 NOAA의 연구자들은 시민들이 사이렌에 무감각해지는 것에 그리 놀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평생 동안 자연재해의 파괴적 힘을 한 번 정도 겪을까 말까 합니다. 때문에 자연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요. 자연재해나 여타 다른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도 자신만은 안전할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가죠."

인과관계 규명이 불가능하더라도 기후변화가 악천후에 미치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2011년 12월 5일
7개월여가 지났지만 필자의 고향 마을 재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지구온난화가 토네이도 발생 양상을 바꿔놓았는지 가장 제대로 판단하려면 토네이도 관련 통계의 변화를 분석, 어떤 기후모델이 그 변화를 설명해줄 수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장기간 축적된 신뢰성 높은 토네이도 관련 자료가 부족하다. 또한 토네이도의 발생과정 자체가 명확히 연구되지 않았기에 과학자들은 아직도 어떤 폭풍우는 토네이도로 변하고, 어떤 것은 그러지 않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기후의 변화를 탐지하고 변화 중에서 인공적 요인에 의한 변화가 무엇인지를 추출해내는 과정을 가리켜 과학자들은 '탐지와 귀속'이라 칭한다. 기온 변화, 강수량 변화 등 비교적 실체가 잘 알려져 있고 문서화도 잘 돼 있는 현상에 대한 탐지와 귀속 연구는 이미 10년 전부터 신뢰성 높게 수행되고 있다. 반면 기후변화가 조플린 토네이도 같은 기상재해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조차 기후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를 주저한다.

조플린 토네이도 발생 이후 환경 관련 웹사이트인 예일 인바이런먼트 360은 여러 기후전문가들에게 '악천후와 지구온난화가 관련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환경공학과 앤드류 와트슨 교수의 답은 이랬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더 지독한 악천후를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이 같은 과묵한(?) 태도는 분명 자료를 확대 해석하고, 수십년간 누적된 통계에 기반하지 않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경계하는 건전한 과학적 회의주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괜히 공식석상에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 논란의 한복판에 서는 꼴을 당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다. 와트슨 교수가 속한 이스트앵글리아대학도 '클라이멋게이트(Climategate)'라는 가짜 스캔들에 휘말렸다가 간신히 누명을 벗은 적이 있다.

당시 스캔들에서 비평가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취득한 이메 37일의 내용을, 앞뒤 문맥 다 자르고 인용하면서 이 대학의 연구자들이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된 기후학자들은 순식간에 학계에서 낙태 전문의 취급을 받으며 비방과 희롱에 시달렸고 물리적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이산화탄소 배출에 세금을 물리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던 호주의 몇몇 기후학자들 역시 무수한 살해협박을 당했다. 대학 당국이 이들의 연구실을 보안시설 내로 옮길 정도였다.

미 국립대기연구센터(NCAR)의 기후분석 선임과학자 케빈 트렌버스는 현재의 악천후를 기후변화와 연관 짓는 과학자들보다 더 대담한 입장을 취한다. 그는 기후변화가 조플린 토네이도와 같은 재해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기 내의 에너지가 늘어나면 조플린 토네이도 같은 재해가 더 빈번히, 그리고 지금보다 강력한 규모로 일어날 거라고 강조한다.

이는 간단한 열역학 지식에 기반하고 있다. 공기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습기를 머금는다는 게 그것이다. 1970년 이후 대기 속의 수증기 농도는 4% 높아졌는데 많아진 습기로 인해 토네이도도 자주 유발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단기간에 걸친 약간의 수증기 농도 상승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농도가 높아져서 원래보다 5~10%의 습도가 상승하면 토네이도 발생빈도 증대가 나타난다. 평범한 폭풍을 슈퍼셀로 키우고, 기존의 기록을 경신할 만큼 강력한 토네이도를 생성시키기에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트렌버스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 주장의 타당성 입증을 위해 연구 해 왔다. 물론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과학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과학자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2010년 미국 남동부의 테네시강이 1,000년에 한번 있을까말까 한 대규모 범람을 일으킨 직후 그가 밝힌 바 있듯이 과학자들이 현재의 악천후와 이미 충분히 밝혀진 기후변화 양상 사이의 연관관계를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후변화가 각각의 토네이도 생성 원인, 또는 그들을 강화시키는 원인인지를 밝히는 것은 과학의 인식론적 한계를 뛰어넘은 곳에 있는 것 같다. 단지 인과관계 규명이 불가능하더라도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후변화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여러 유형의 악천후들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악천후의 발생빈도 또한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트렌버스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이렌 소리라고 피력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최대 안전치는 350ppm이었다 그러나 이미 387ppm에 도달했고 매년 2ppm씩 추가 상승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증거?
초강력 토네이도가 지구온난화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 것과 사실이 아닌 것은 엄연히 다르다.

부모님을 뵙기 위해 조플린으로 가던 중 누군가 페이스북을 통해 '조플린 향우회'라는 그룹에 초청했다. 그는 일주일 뒤 토요일 밤에 조플린의 한 술집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한다며 참가를 권했다. 모임의 캐치프레이즈는 '무너진 마을의 재건을 위해 술잔을 들자'였다.

모임이 있던 날, 피해지역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썩은 고기냄새, 유리섬유 단열재와 플라스틱이 타는 냄새, 철거에 동원된 전동톱이 내뿜는 매연 등이 온 대기를 채웠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청소팀은 불도저가 잔해를 밀어버리기 전, 무너진 주택에서 귀중품을 찾아 주인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맞고 있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그날 모임에 참가했다. 개중에는 필자의 절친도 있었다.

참석자들의 사기는 놀라우리만치 높았다. 처음에는 "이거 믿어져?" "아직도 꿈 속 같군" 같이 대형 재난을 경험했을 때 오갈 수 있는 대화가 이어졌지만 어느 순간 크리스마스를 앞둔 친구들만의 동창회 분위기로 흘러갔다.

재해 후 한 주 동안 토네이도의 피해를 피한 조플린의 가정은 마치 외 2012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의 민간지원센터 구실을 했다. 끔찍한 상황의 목격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와 위로를 하며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부친도 병원 응급실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지인이 찾아와 늘어놓은 충격적 경험담을 들어줬다. 그는 두피가 벗겨진 노인과 턱이 부서진 부상자를 본 일을 얘기했고 생존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을 중심으로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에게 아직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를 의미하는 검은색 테그를 붙이는 것을 보기도 했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래도 이런 힘들고 무서운 사고의 이면에는 항상 위로가 되는 사실이 숨어 있었다. 타인들을 돕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또 오래 전부터 재해가 뜻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해 피해자들은 현재에만 집중하면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모두 잊는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사회학자 찰스 프리츠는 1961년의 논문 '재해와 정신 건강; 재해 연구를 통해 내린 치료 원칙'에서 이러한 효과를 '정신적 건강 상태(Mentally healthy condition)'라 명명했다.

미국 연방정부 차원의 프로젝트인 글로벌 기후변화 연구프로그램(USGCRP)은 기후변화가 미국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의 파악이 목표다. 연구결과 USGCRP는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중부지방은 더 더워지고 건조해질 것이며, 동부는 습도가 높아진다고 내다봤다. 또한 미 전역에 걸쳐 폭우는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 변화는 이미 조금씩 진행되고 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작년 여름 미국에는 75년 만에 최고의 폭염이 찾아왔다. 조플린에서 잔해물 철거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에도 기온은 거의 매일 최고기록을 경신, 43℃까지 치솟았다. 남부로 갈수록 더위와 가뭄은 심해진다. 작년 텍사스는 사상 최악의 가뭄을 맞았다.

반면 미국 북동부 5개 주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일리노이, 인디애켄터키,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작년 4월은 116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다. 미시시피강의 범람으로 3개주 1만2,140㎢의 지역이 수몰됐다. 같은 해 8월에는 미국 역사상 10대 자연재해로 분류된 허리케인 아이린이 동부해안을 덮치기도 했다. 아이린은 미 연방 재해구호기금(FDRF)이 조플린의 복구를 위해 확보한 자금을 아이린 피해복구에 써야 했을 만큼 막대한 파괴력을 과시했다.

기상학자 제프 마스터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2010년과 2011년에 일어난 악천후는 거의 모두 1,000년 만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것이다. 기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없다면 이런 악천후들이 이토록 짧은 기간 내에 많이 발생할 수 없다."

그러나 2010년 조사된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인 중 단 59%만이 현재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는데 동의했다. 2006년의 79%와 비교하면 20%나 줄어든 수치다.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27%의 미국인만이 가장 큰 환경문제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2009년 29명의 과학자들이 '인류의 안전운행공간(A Safe Operating Space for Humanity)'이라는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했다. 논문에서 학자들은 지구상의 생명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데이터 포인트들을 제시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최대 안전치는 350ppm이었다. 그러나 이미 387ppm에 도달했고 매년 2ppm씩 추가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머지않아 농도가 줄어든다거나 하다못해 증가세라도 둔화될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흔히 조플린 토네이도와 같은 이상기후는 '기후 주기설'로 설명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도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주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1000년 전과 지금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그렇게 바꿔 놓은 데는 인류도 한몫을 크게 했다. 인류가 일으킨 지구온난화의 결과는 사실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20년, 50년, 100년 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리고 우리 생전에 감당키 힘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by SETH FLE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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