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이런 기회를 잡았다. TV 방송을 통해 모든 화학현상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백린(白燐, white phosphorus)의 발광 현상을 대중들에게 선보인 것.
인(P)의 동소체인 백린은 엄청나게 소름끼치는 물질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의 하나인데다 공기 중에 노출되면 자연 발화된다.
게다가 필로폰 제조에도 자주 이용된다. 때문에 이를 파는 회사도 많지 않다.
아마도 제정신이 박힌 과학자라면 전국으로 방송되는 카메라 앞에서 이 위험천만한 백린을 가지고 실험을 해달라는 제의를 수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다르다. 군용 탄약통 속에 백린을 담아 뒤뜰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고 있는 몇 안되는 과학자다.
TV 출연을 앞두고 필자는 믿음직한 친구인 아이슬란드 태생의 화학자 트리그비 박사와 함께 생명에 위협받지 않고 안전하게 백린을 다룰 수 있는 혼합 비율을 계산해냈다. 그 계산에 따라 페인트용 시너의 주성분인 톨루엔에 백린을 혼합, 손 위에 골고루 발랐다.
물론 필자도 괴짜일 뿐 미치지는 않았기에 맨손이 아닌 라텍스 장갑을 착용했다.
어쨌든 그러자 그동안 책에서만 읽었었던 놀라운 효과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입김을 불었더니 손 전체에서 차가운 불빛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둥둥 떠다녔다. 톨루엔이 증발하면서 백린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 형광성 기체를 내뿜으며 인광(燐光)을 발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반응은 사진에 담기가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성능이 뛰어난 저조도(low light) 카메라를 구해 간신히 촬영에 성공했다. 다만 어둠에 적응한, 즉 암순응(暗順應)된 사람의 눈으로는 충분히 밝게 볼 수 있으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환상적인 화학현상에 심취된 필자도 실험을 마치고 장갑을 벗고서야 톨루엔이 라텍스를 뚫어버린 것을 알아채고 심장이 멎을 뻔했다.
백린이 피부에 묻었을 때의 대책은 전혀 세워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손에 묻은 백린은 극미량이어서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말이다.
WARNING
누구라도 이 실험을 따라 해서는 안 된다. 맹독성인 백린(白燐)은 극소량만 흡입해도 위험하며 피부에 묻으면 큰 화상을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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