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활용한 연구에서 힉스입자로 추정되는 새로운 소립자(素粒子)를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힉스 입자는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했다고 추정되는 물질로 이의 실체가 확인되면 질량의 기원에 대한 오래 의문이 풀리게 된다.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힉스 입자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주의 탄생 과정과 관련해 학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은 '표준모형모델'이다. 이 모델에서는 우주가 17개의 기본 입자로 구성돼 있다고 보는데, 137억년 전 우주 탄생 당시 힉스 입자가 나머지 16개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졌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표준모형모델에 등장하는 입자 중 16 개는 발견됐다. 오직 힉스 입자만이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채 미지의 세계에 남아 있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 과학자들은 힉스 입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반세기 이상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4일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인 LHC로 힉스 입자 찾기에 매진해왔던 CERN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오매불망 찾아 헤맸던 힉스 입자에 부합하는 소립자를 발견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던 것.
그동안 CERN은 실험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CMS와 아틀라스(ATLAS)라는 두 개 팀에서 별도로 힉스 입자를 추적해왔는데 이번에 두 팀 모두 이 소립자의 실체를 확인했다. CMS팀은 125기가전자볼트(GeV), 아틀라스팀은 126GeV 근방에서였다. 이는 물리학계에서 힉스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한 영역에 포함되는 것으로 수소 원자 125개를 더한 질량과 비슷하다.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이 입자의 존재 확률은 5시그마, 쉽게 말해 약 99.99994% 수준이다. 300만번 실험을 거듭했을 때 1번 정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확률에 해당한다.
이날 오전 스위스 제네바의 CERN 강당에서 진행된 발표에서 CMS팀의 발표자로 나온 조 인칸델라 박사는 "실험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가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아직은 잠정적 결과지만 이 생각은 강하고 확고하다"고 밝혔다.
아틀라스팀의 파비올라 지아노티 박사 역시 "우리는 이 소립자가 힉스 입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발견된 보손 중 가장 무거운 녀석"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 100% 확언하지는 않았고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밝혔지만 사실상 확실하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확신에 찬 발표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던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은 일제히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보손 (boson) - 양자 통계역학에서 보스-아인슈타인 통계를 입자를 가리킨다. 스핀이 0이거나 정수인 입자는 보스-아인슈타인통계를 따르는데, 이러한 입자들을 모두 가리켜 보존이라고 부른다. 보스입자라고도 한다.
"실험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가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잠정적 결과지만 이 생각은 강하고 확고합니다."
연말쯤 100% 결론 도출
'신의 입자를 찾아서'의 저자인 이종필 박사는 "힉스 입자로 인해 우주를 생성하는 기본 입자들이 질량을 가질 수 있다"며 "힉스 입자의 존 재가 입증되면 표준모형모델이 완성되고 질량의 기원과 우주생성의 비밀이 설명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새로운 소립자가 의심할 여지없는 힉스 입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올 연말쯤에 이르면 지금보다 약 3배 이상의 데이터가 축적되기 때문에 신뢰도 100% 수준의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빅뱅이론과 표준모형모델
LHC를 이용한 실험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속한 은하와 태양계, 지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원초적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다. 지난 1960~1970년대만 해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상태의 우주가 존재했다고 보는 '안정 우주론'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현재는 빅뱅이론이 대다수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빅뱅이론은 진공 상태의 한 점으로부터 대폭발이 일어나 지금의 우주가 만들어졌으며, 이 폭발의 여파로 수소, 산소, 철 등의 각종 물질이 생겨났다고 본다. 또한 이렇게 생겨난 물질들이 은하, 태양계, 지구, 그리고 인류라는 생명체를 탄생시킨 근원이 됐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빅뱅 이전의 진공 상태는 단순히 공기가 없는 상태가 아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정한 무(無)를 의미한다. 물론 지금 우리가 눈으로 확인 가능한 물질은 전체 우주의 단 4%에 불과하며 나머지 96%는 암흑물질 또는 암흑에너지로 채워져 있다고 여겨지는 만큼 빅뱅 이전에 어떤 물질이 존재했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빅뱅이론은 무를 기반으로 한다.
이와 관련 모든 물질을 잘게 쪼개면 분자·원자·전자 등의 단위로 작아진다. 과학자들은 모든 물질이 이 같은 소립자로 구성돼 있다고 보는데 빅뱅이론과 소립자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우주 생성의 표준모형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에 의하면 대폭발로 우주가 생성된 시점부 터 약 10억분의 1초 동안 소립자들이 힉스 입자로 구성된 가상의 에너지 공간인 '힉스장(higgs field)'을 통과하면서 질량을 얻게 된다.
결국 최초의 우주에 이미 질량을 가진 물질이 있었다면 빅뱅이론은 붕괴된다. 고 교수는 "무의 상태에서 빅뱅을 통해 질량이 만들어졌음을 입증해야만 표준모형모델과 빅뱅이론이 진실로 다가설 수 있다"며, "그렇게 해줄 유일무이한 존재가 바로 힉스 입자"라고 설명했다.
표준모형모델에 의하면 대폭발로 우주가 생성된 시점부터 약 10억분의 1초 동안 소립자들이 힉스 입자의 에너지 공간인 힉스장(higgs field)을 통과하면서 질량을 얻게 된다.
물리학 히어로
CERN 아틀라스팀 지아노티 박사[아래]의 발표가 끝난 뒤 현장에 있던 과학자들이 악수를 청하며 위대한 업적을 축하하고 있다. [위] 사진은 롤프 디터 호이어 CERN 사무총장과 CERN CMS팀의 조 인칸델라 박사.
블랙홀이 생성된다?
CERN에서 LHC 실험을 통해 밝혀내고자 하는 비밀은 힉스 입자만이 아니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블랙홀, 평행우주 등의 실존 여부가 확인될 수도 있을 것 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중 암흑물질 및 암흑에너지의 실체가 규명되면 우리가 모르는 우주의 대부분을 이해 할 수 있게 되면서 현대 우주론의 허점으로 남아있던 많은 수수께끼들이 풀릴 수 있다.
끈이론과 함께 초끈이론의 한 축을 이루는 초대칭성(Supersymmetry)도 실체 규명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우주의 모든 입자는 자신과 대칭성을 지닌 짝을 갖고 있다는 이 이론은 LHC가 초대칭성의 핵심인 초짝(super partner) 입자를 찾아내는 순간 진실로 규명된다.
초끈이론이나 M이론 등에서 등장하는 여분의 차원(extra dimension)은 어떨까. 과학계는 그 확률을 매우 낮게 보고 있지만 만일 LHC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상하, 좌우, 앞뒤의 3개 차원 외에 여분의 차원을 발견해낸다면 인류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것이다.
LHC 연구자들은 또 광속에 가깝게 가속된 양자는 막대한 에너지와 질량을 가지기 때문에 충돌 순간 시공간을 왜곡하는 블랙홀이 관측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지구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종말론적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CERN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설령 블랙홀이 생성되더라도 그럴 염려는 전혀 없다고 일축한다. LHC가 만들어낼 블랙홀은 소금 입자 무게의 10-18에 불과해 어떤 작용을 일으킬 수 없을 만큼 급속히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파퓰러사이언스는 지난 2008년 LHC의 가동을 앞두고 전 세계의 주요 입자가속기 관련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LHC가 이뤄낼 성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조사에서 힉스 입자는 발견확률이 90%로 예측 됐으며 암흑물질(암흑에너지) 60%, 초대칭성 42.8%, 여분의 차원은 4% 수준으로 평가됐다.
블랙홀의 경우 생성 확률은 1,000분의 1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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